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아파트의 고양이 (3) 본문
(3)
막 서쪽으로 떨어진 해와 에어컨 실외기의 열기 탓으로 발코니는 몹시 후텁지근했다. 그리고 그 뜨거운 공기 속에는 예의 텁텁함이 속속들이 스며 있었다. 난 집안을 한 바퀴 돌며 창문을 열고나서 라면 끓일 물을 얹었다. 스프를 꺼내고 봉지째 라면을 네 조각으로 나누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분명 당신이 정성껏 해놓고 간 밥을 먹고 있다고 말했지만 아내는 귀신같이 라면 물이 끓고 있음을 알아차렸고, 전화를 돌려받은 딸아이의 목소리는 이모와 사촌동생을 기다리느라 잔뜩 들떠 있었다.
그래도 저녁이 되자 바람이 한결 나았다. 아랫집에서도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성실한 인부들은 처음 보았다. 내부공사에 대한 양해를 구한다고 주인이 달랑 음료수 한 상자를 갖다 주고는 한 달 내내, 그것도 아침 8시가 되기도 전에 시작해서 저녁 7시가 다 될 때까지, 게다가 주말에는 안 할 거라는 약속을 어겨가면서까지 온갖 소음과 냄새를 몰래 만들어냈었다. 마침 쿵쿵거리던 윗집도 조용했다.
라면을 먹으며 앞으로 할 일을 떠올리던 나는 열무김치 한 가닥을 입에 넣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가장 싫어하는 굴비 굽는 냄새 때문이었다. 벌떡 일어나 부엌에 가까운 창과 발코니의 가운데 창을 닫았다. 내 집 네 집 할 것 없이 창을 활짝 열어 놓는 계절인데 겨우 몇 군데 막은 걸로는 범같이 달려드는 그 냄새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10대를 맞으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굴비를 꺼리기 시작했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굴비를 손으로 뚝뚝 뜯어 한 입 움켜 씹고는 손가락까지 쪽쪽 빨던 어떤 모습이 그 고릿한 냄새에 진저리치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나로서는 화생방 훈련에 버금가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데 잠시 조용하던 윗집에서 우당탕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청소기의 ‘우-웅’하는 소리가 아닌, 물건을 들었다가 던지는 듯한 우당탕 소리.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창문 열어놓는 계절에는 굴비를 굽지 말라고, 청소할 때는 물건을 집어던지듯 내려놓지 말라고, 아래윗집으로 쫓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담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이사 오던 날, 대충 짐을 부린 후에 방에 딸린 작은 발코니에서 담배를 반쯤 태웠을 때 관리사무소에서 방송이 나왔다. 여름에는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자고. 나는 그만 깜짝 놀라, 머리를 내밀었다가는 물벼락이라도 맞을 것 같아 창에서 멀찌감치 떨어졌었다.
그럭저럭 바람이 부는 주차장을 한 바퀴 돌고 들어오니, 굴비 냄새가 물러간 대신 이번에는 다른 냄새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뭔가 태우는 냄새랄까? 나는 아차, 하며 놀라서 부엌으로 뛰어 갔다. 다행히 가스렌지는 꺼진 채였다. 집안을 이리저리 킁킁거리다 발코니에 다다랐지만 딱히 밖에서 들어온다고 하기도 어려웠고 오히려 배수관 구멍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 뭔가 타는 냄새에 놀란 아내는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했었다. 지난달 건너편 아파트에 화재가 났던 터라 득달같이 달려온 직원은 냄새를 맡아 보고는 곧장 아랫집으로 내려갔다. 마침 아랫집은 비어 있었다.
“주인이 내일 이사 간다고 비밀번호를 가르쳐 주더래. 들어가 보니 짐은 다 꾸려져 있고 발코니에는 아무 일도 없고. 직원이 어느 층엔가 노인분이 쑥뜸을 뜬다고, 이 냄새가 그 냄샌가, 하고는 갸웃거리며 돌아가더라고.”
후각 자극에 대한 설명을 청각으로 듣다보니 도무지 감이 안 왔었는데 막상 맡아 보니 화재를 떠올릴 만한 묘한 냄새였다. 두리번거리던 나는 더 심해지는 것 같지는 않자 걱정을 접고,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자리에 앉아 마우스를 잡았다.
저녁에는 연구 전략을 손볼 참이었는데, 적은 연구비로 독자 수행하느니만큼 외부와의 공동연구 등 쓸 만한 내용이 별로 없었다. 하루 만에 까칠해진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쓸 거리를 꾹꾹 짜내고 있을 때, 멀리서 헬기 소리가 들려왔다.
탁! 탁! 탁! 탁!
점점 소리는 높아지고 커져갔다. 탁, 탁, 탁, 탁.
헬기들은 근처에 있다는 공항 때문인지 늦은 시간에도 심심찮게, 어떤 때는 기러기 떼처럼 연이어 날아가기도 했다. 비행기가 사람 눈을 속이며 구름 속을 날고 있을 때는 유리창이 한겨울 한옥집의 문풍지처럼 바르르 떨기도 했다. 탁탁탁탁, 이 정도 쯤이야, 나는 가볍게 넘기고 있었다.
그 소리가 거의 사라져갈 무렵, 빠른 템포의 피아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똑같은 시각에 똑같은 곡, 거의 반년 동안 두 곡도 아닌 딱 한 곡, 그리고 따악 정해진 30분 동안만. 아내는 음악 실기를 위한 연습일 거라고 했지만, 저 정도 솜씨로 다른 곡은 한 곡도 안 치는 윗집 아이를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연구 전략을 덧대는 걸 포기하고 그럴싸한 기대효과를 생각해 내려고 애썼지만 이 역시 너무 뻔한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기대효과라…… 게다가 엄지와 약지 손톱 사이에 잡힌 수염 한 가닥이 도무지 뽑히지 않은 채 짜증만 증폭시키고 있었다. 바로 그때, 손톱 사이의 균형이 깨지며 엄지손톱이 약지손톱 밑을 아프도록 파고들었을 때, “퍽”하고 어느 집의 에어컨 시동 소리가 들렸다. 발코니 확장 공사를 하는 바람에 실외기를 자기 집안에 두지 않고 외부 앵글에 설치한 모양이었다. “퍽!…… 퍽!” 서서히 식어 가던 날씨는 밤이 되면서 또 다시 더워지고 있었다.
9시가 되자 정확하게 피아노 소리는 멈췄다. 그러자 그 틈을 비집고 전혀 귀에 익지 않은 소리가 가늘게 떨려 왔다. 나는 5분 정도를 멍하니 있다가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 벌렁 드러누웠다. 소리가 벽을 타고, 바닥을 타고, 금속성 빛깔로 다가왔다. 나는 찐득하게 달라붙는 바닥에서 벌떡 일어났다. 발코니로 나가니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퍽”하고 바로 위에서 소리가 났다. 큰 소리가 잦아드는가 싶더니 그 듣기 싫은 소리가 기승을 부리며 벽을 타고 창틀을 타고 내려왔다. 그때부터는 아무리 노트북을 붙들고 있어도 원숭이의 괴음에 소름이 돋던 인류의 조상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어두운 바깥을 보다가, 인터폰을 보다가, 마침내 짜증을 내며 현관문을 열었다.
“아랫집에서 왔습니다.”
손님도 주인도 탐탁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참 시간이 걸린 후에 윗집 여자가 칙칙한 표정으로 문을 열어주자, 나는 늦은 시간의 방문에 대해 양해를 구하며 남편을 찾았다. 그녀는 들어오라고 말하며 부엌 쪽으로 슬리퍼를 신고 걸어갔고, 남편은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며 어깨가 떡 벌어진 다부진 몸매로, 다소 뚱한 표정으로 자리를 권했다. 밤 10시가 넘어 그럭저럭 견딜 만한대도 에어컨은 싱싱 찬바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나는 가늘게 떨리는 소리를 찾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애 아빠가 몹시 더위를 탄다며, 어제도 밤새도록 켜놓는 바람에 자신과 아이들은 방문을 닫고 잤다며 그녀는 누가 물은 것처럼 설명을 했다. 남자는 선잠을 깬 아이처럼 못마땅한 표정이 그득했다.
“저희 집에 에어컨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립니다.”
“……원래 처음 시작할 때는 소리가 크지 않습니까?”
“……그 소리야 어쩌겠습니까? 그게 아니고, 뭔가 서로 맞닿아서 떠는 듯한 소리입니다.”
남자는 입을 꾹 다물고 나를 쳐다보더니만 벌떡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실외기를 살펴보았다.
“괜찮은 것 같은데요.”
나도 남자 옆으로 가서 훑어보았지만 실외기와 앵글이 서로 닿아 있거나 한 건 아니었다.
“모기가 집단적으로 우는 듯한, 그런 소린데. ……이거 어쩌나?”
“……그럼 실외기를 이리저리 움직여 볼 테니까 한번 들어 보세요.”
나는 마침 집에 아무도 없다며, 인터폰으로 얘기를 할 테니까 위치를 조정해 보라며 집으로 내려갔다. 뜻밖에도 몇 번 움직이자마자 그 소리는 현격히 줄어들었다.
“우리 집에선 모르겠는데 소리가 컸나 보군요.”
“쉽게 해결이 돼서 다행입니다.”
“혹시 또 소리가 나면 올라오시지 말고 인터폰만 주세요.”
현관문을 나서는데 윗집 여자가 두터운 화장을 한 것 같은 얼굴로 웃으며 한마디를 보탰다.
“부인께서 시끄럽다고 해서 요새 슬리퍼를 신고 다녀요. 하도 예민하신 것 같아서…….”
나는 얼굴이 찡그려지는 것 같아 급히 예, 하며 웃었다.
*
근래 그는 ‘난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책을 읽었다. 그가 아내에게 말하는 걸 봐서는 일단 재미있는 책인 것 같지만 결말이 도대체 마음에 안 든다. 우리 사이에 가장 심한 욕이 ‘물에 빠져 죽을 고양이’이다. 조상이 아프리카 사막 출신인 우리는 더운 건 즐겨도 습한 건 딱 질색이다. 그런 우리 종족이 아무리 세태를 비관한다고 물독에 빠져 생을 마감하겠는가?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일본에 산다고 우리 종족이 제 정신이 아닐 리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전 지구상의 고양이들은 깊은 연대감을 서로 느끼고 있다. 여기서 연대감이란 서로 어깨동무를 한다는 게 아니고 생김새, 털빛, 눈 색깔 등의 미시적인 차이와 관계없이 서로를 고양이로 존중한다는 것이다. ‘Uncyclopedia’라는 ‘믿거나 말거나’ 사전을 보면, 고양이들은 마음껏 낮잠을 즐기기 위해 그들의 ‘완벽한 암살 팀(Complete Assassination Team, CAT)’으로 모든 세계 지도자들을 암살할 것이다, 라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의 연대성을 간파한 인간의 지혜에는 감탄하지만 우리는 누구 하나를 뽑아 놓고 그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걸 과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지금 자신이 끓인 라면 맛에 스스로 감탄하고 있다. 나는 좀 전에 그가 아내와 통화하는 걸 보고 하마터면 야옹, 하고 소리 내서 웃을 뻔했다. ‘라면’을 들킨 것에다가 일의 진척이 없는 걸 두루뭉술하게 합해서 짜증을 내려던 그가 딸아이의 목소리에 이도저도 못하고 다정한 아빠로 돌아가던 모양이 한 편의 희극이었다. 어떤 소설에서 남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딸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나도 그런 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 다행히 몇 년 전에 병원에 끌려갔을 때, 결사 저항하여 나의 존엄을 지킨 일이 있었다. 그 일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인간의 집을 탈출하고 싶고 인간이 주는 거라면 물 한 방울, 사료 한 알도 먹고 싶지 않다. ……사실, 한 달째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그러나 지금 그러기에는 너무 좋은 냄새가 난다. 굴비가 나를 비굴하게 만든다. 그는 왜 이렇게 좋은 걸 거부하는지 모르겠다. 마치 캡슐에 든 약을 터뜨려 먹은 듯 오만상을 찌푸리며 라면을 먹고 있다. 선한 그에게 후각 장애가 있다는 건 지극히 안타깝지만 그래도 햄과 같은 훈제 식품을 좋아한다는 건 아직 가능성이 있다는 것일 게다. 그나저나 이제는 살 만 하다. 바닥을, 온몸을 흔들어대던 진동도 내일 아침까지는 쉴 것이다.
저녁을 먹고 가볍게 한숨 자고 나면 우리는 외출의, 아니 출근의 유혹을 느낀다. 구역을 한 바퀴 돌면서 각종 정보를 갱신하고 다른 종족과 우리 고양이들의 출입을 점검해야 하는데, 솔직히 말해 난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사실 주거지가 일정한, 그것도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고양이들은 그 일을 포기한 지 오래다. 기껏해야 좁디좁은 아파트 안을 순찰하면서 선조들이 숨 쉬었을 자유로운 공기를 상상할 뿐. 그렇게 내가 자유의 불량한 냄새를 한껏 그리워하고 있을 때, 어김없이 저녁 일과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달콤한 굴비 냄새를 밀치며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곧 윗집에서는 아침과 저녁마다 하는 ‘우당탕’을 시작할 것이고, 좀 있으면 하늘에서는 ‘탁탁탁탁’ 소리가 날 것이고, 좀 더 지나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가 연주될 것이다. 아파트는 수많은 톱니바퀴로 작동되는 거대한 시계와 같다. 나는 그 중앙에서 그들의 작동을 감시하는 사려 깊은 고양이인 셈이고.
고약한 담배 냄새를 잔뜩 흘리며 들어오던 그가 급하게 부엌으로 뛰어 간다. 내게 간식을 주고자 함인가? 요즘 가뜩이나 식탐을 줄이고 있는데 아-훙…… 자꾸 하품이 난다. 다행히도 그건 아닌가 보다. 그가 후각 장애인답게 착각을 한 것 같다. 이 냄새는 우리와는 무관한 식물의 냄새인데, 라면 끓이기 전부터 집안에 들어와 있었다. 인간은 피를 흘릴 때가 돼서야 음식에 독이 들었음을 안다. 요약하면 인간의 후각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어릴 때 모친께 들은 바에 따르면 터키라는 나라에서는 우리 종족이 제대로 존중받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자유고양이’들처럼, 불량 인간의 폭력에 긴장하고 점점 황폐해지는 식주(食住) 환경에 고통 받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대도 한번 터키 고양이를 상상해보라. 보스포러스 해협의 바람을 맞으며 돌마바체 궁전에서 늘어지게 졸다가 점심때가 되면 식당가로 어슬렁어슬렁 걸어내려 간다. 그곳에는 인간이 먹다 남기거나 버리는 게 아닌 제대로 된 음식이 기다리고 있다. 오감이 정상인 우리들은 음식의 형색(形色)을 인간들처럼 고집하지는 않는다. 식사를 마친 터키 고양이는 버젓이 길을 걸어간다. 차 밑으로, 골목 사이로, 담벼락 위로 굳이 다닐 필요는 없다.
고양이와 공존하지도 못하면서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인간의 종교는 다 위선일 뿐이다. 우리는 물론 다른 종족들도 그대들 인간을 위해 태어난 적이 없다, 그대들이 우리를 위해 태어난 적이 없듯이. 이렇게 오랜만에 문명 비평적 사유에 골몰해 있는데 저 소리가 나를 짜증나게 한다. 아! 나는 괴롭다. 고로 존재…… 아니, 편두통이 생길 것 같다. 이럴 때 저 인간처럼 둔할 수만 있다면 정말 좋으련만.
그런데 그도 안쓰럽다. 감각장애인 것도 안쓰러운데 수염까지 쥐어뜯어가며 뭔가 짜내려는 모습이 연민을 느끼게 한다. 그럴 것이다. 동화구연가도 아닌 바에야 대동소이한 내용을 반복하면서 신이 나는 척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기술이든 개발해서 잘 활용하면 다 세상에 보탬이 될 것인데, 저런 식으로 써줘야만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직관 결핍이 안타깝다. 심판하는 자가 어리석을수록 이것저것 물어대는 법이리라. 이 모든 게 전감 교육이 부재한 탓이다. 편식을 하면 건강을 해칠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나도 너무 사료만 먹는 것 같아 요즘 걱정이다. 그러는 사이, 그는 손톱 밑이 찔렸다고 저 나이에 호들갑을 떨고 있다. 정말…… 안타깝다.
그런데 그 정도면 안타까운 것도 아니다. 오전에 그의 아내와 딸아이가 떠난 다음, 마침 아래층도 시끄럽지 않아 조용히 명상에 잠겨 있는데, 위층에서 물청소를 하는지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유리창을 타고 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리고 망사창으로 안개 같은 물방울이 멀리까지 날아 들어와 내 수염을 건드렸다. 나는 문득 화초에 분무기로 물을 뿌리던 그녀가 떠올랐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그녀는 장난치듯 내게 물을 뿌리곤 했었다. 그러면 햇살을 받아 오색은 아니래도 지금처럼 무지개가 그 집의 발코니에 꽂혔었다. 나는 가볍게 마루로 뛰어 내려 무지개를 향해 부드럽게 걸어갔다. 더 많은 물방울들이, 점점 커지면서 얼굴을 두드렸다. 아, 이 상쾌함! 지금쯤 그녀와 아이는 밴쿠버의 어느 저녁 길을 걷고 있을까? 갑자기 우리 셋이 누워 뒹굴던 침대가, 그녀가, 아이가 떠올랐다. 바로 그 순간, 물방울처럼 햇빛을 따라 올라가던 내 추억을 윗집의 이불 터는 소리가 깨뜨려버렸다. 무당이 굿할 때 휘두르는 알록달록한 천 같은 이불이 내 꿈을 깨뜨리고는 허공에서 펄럭였다. 그러자 그동안 몹시 참았다는 듯이 아래층에서는 소리가 터져 나와 내 귀와 수염과 발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소파의 삼베 방석 위로 올라가 몸에 묻은 물방울을 정성스럽게 혀로 닦아냈다. 물방울에서는 도시의 탁한 맛과 냄새가 났다. 난 만사가 귀찮아져서 벌렁 드러누웠다.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그렇게 배까지 드러낸 방심은 비록 그의 출현으로 무참하게 끝나고 말았지만.
내가 잠시 오전의 기억 속에 빠진 틈을 타서 그가 뭔가 일을 벌인 것일까? 그가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땀을 닦고 있다. 난 전감을 발동시켜 집을 한 차례 싸악 훑었지만 변동 사항을 찾아낼 수 없었다. 뭘까? 굳이 변한 게 있다면 편두통을 유발할 것 같던 소리의 크기가 줄고 주파수 대역이 약간 이동했다는 것인데. 설마…… 이건 아닐 것이다. 아무리 인간이 둔하다고 해도 요 정도 갖고 저리 행복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도 순식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