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아파트의 고양이 (5) 본문
(5)
어제 집에 올 때와 별 차이 없는 제안서가 만들어졌다. 나는 잠시 눈을 붙인 후에 아예 제출까지 하고 출근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침이면 늘 그렇듯 일찍 일어난 녀석은 발코니의 의자에 앉아 바깥을 내려다보고 있다. 난 피곤한 눈두덩을 찬물로 적셨다. 어느 층인지 모를 남자의 가래침 뱉는 소리가 조용한 아침을 갈랐다.
수건에 얼굴을 닦고 있을 때 윗집 여자가 아이를 깨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귀에 익은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어젯밤 늦게까지 그렇게 괴롭히던, 바로 그 웅성거림. 나는 살며시 간이의자에 조심스레 올라섰다. 욕실의 환기구로 다가갈수록 분명 소리는 커져갔다. 이윽고 숨죽인 내 귀를 통해 들리는 남녀가 주고받는 말소리, 그건 바로 영어 회화 테이프 소리였다. 다행히도 잠시 내가 누워 있는 곳까지 따라오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