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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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단편소설

아파트의 고양이 (4)

조용한 3류 2014. 12. 28. 13:53

(4)


살금살금 위층으로 올라가 문에 살며시 귀를 댔다. 아무리 신경을 곤두세워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계단을 다시 조용히 내려와 살며시 문을 닫았다. 거실과 마루에서는 웅성거림이 여전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아파트를 한 바퀴 주욱 돌았다. 아랫집은 전혀 불빛이 없었고 윗집도 안방의 건넌방만 불이 켜져 있었다. ‘저 방은 큰애가 혼자 쓰는 방이라고 들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나는 공연히 한 바퀴를 더 돌았다.


경비원이 랜턴을 들고 순찰을 돌다 말을 걸어왔다.


“예. 그냥 담배 한대 피우려고요. 순찰 도는 중이신가 봅니다.”


달무리 진 하늘에 뿜어대는 연기 너머로 경비원의 깊게 파인 굵은 주름이 보였다.


“누가 자꾸 쓰레기를 밑으로 던지네요. 아까 저녁에는 대자리를 둘둘 말아 던졌다우. 사람이라도 맞았으면 어쩌려고…….”

“예? 대자리요? 아니 그런 미친 사람이 있나요?”


그와 나는 담배를 한 대씩 더 물었다.


“슬쩍 놓고 가는 일은 많지만 위에서 그냥 버리는 건 흔치 않지요. 신고하고 버리는 데 몇 푼 든다고, 이런 아파트에 사는 양반들이…….”


떨어진 대자리 때문에 움푹 파인 자리를, 그리고 그 윗집들을 한참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그 자리로 눈길을 주었을 때,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이후로는 아파트에서 길고양이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녀석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집에 들어왔을 때는 웅성거림도, 담배냄새도 사라지고 없었다. 새벽 2시, 집에 온 지 12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내 집에 돌아온 것 같았다.


우리 집이 단독주택 시절을 접고 아파트 생활을 시작한 건 20여 년 전이었다. 그때는 아파트를 여러 사람들이 사는 한 건물이 아닌, 위로 층층이 쌓아올린 한 마을로 여겼나 보다. 누군가는 층간 계단에서 줄넘기를 했고, 또 누구는 현관문을 열고 이불을 털었다. 물론 소음도 훨씬 노골적이었다. 밤중에 동네방네 들리게 싸우는 부부도 있었고, 일부러 망신 주느라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바람피운 유부남을 욕하는 남녀도 있었다. 여름에 현관문을 활짝 열어 놓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도 없다는 이웃을 두었던 일도 불과 몇 년 전이었다. 그래도 압권은 창밖으로 자유낙하한 거대한 대자리였다.


멍하니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애를 썼지만 정상적인 환경이라면 서너 시간 걸릴 일이었다. 나는 꺼칠해진 눈을 껌벅이다가 한숨만 길게 쉬었다. 멈춘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듯 이곳도 이제는 조용하고 편안했다. 


어느 틈엔가 다시 옆자리 방석 위에 누운 녀석은 무슨 꿈을 꾸는지 입까지 달싹거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과 아까 본 길고양이는 서로 많이 닮아 있었다. 전체적으로 짙은 회색빛에 옅은 줄무늬 농담이 있고 배와 발은 눈처럼 하얗고 코도 하얗고……. 문득 예전에 키웠던 고양이, 야옹이가 생각이 난다. 야옹이도 이런 색깔에 코도 하얗고 입 끝은 마치 웃는 듯이 위로 치켜 올라가 있었다. 입을 달싹거리고 있는 이 녀석도 입의 양끝이 올라가 있다. 난 둘이 무척 닮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야옹이, 그놈을 참 애지중지했었다. 양계장을 하던 상계동 친구 집에서 데려온 책임을 지느라 내 신발 위에 볼일을 본 날도 야단 한 번 치지 않았었다. 아무리 그래도 잘해줬다는 말이 떳떳할 수 없음은 두 가지 연유일 게다. 중국 공군기가 귀순해오던 날, 적이 공습을 해 왔다고, 이건 실전 상황이라고 방송이 나왔을 때, 우리 가족들은 허둥지둥 지하실로 대피를 했었다. 겨우 숨을 돌렸을 때 입구에서 야옹, 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놈을 품에 안고 지하실 계단을 내려오면서 수없이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오늘같이 무덥던 여름날, 생선가시가 목에 걸린 놈을 병원에 데리고 갔을 때, 놈은 자기를 죽이는 줄 알았는지 의사와 내 손을 뿌리치고는 위쪽에 열린 조그만 창으로 도망가 버렸다. 우린 그렇게 어이없게 헤어졌었다.


오늘 오후에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방석 위에 사람처럼 드러누워 있는 녀석을 보고는 언뜻 그놈으로 착각할 뻔 했다. 꿈을 꾸는지 잠꼬대까지 하는 녀석한테는 미안하지만, 지금 이상으로 녀석에게 다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윗집으로 올라가 싸우나 했더니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는 모양이다. 나는 엘리베이터 소리가 나자 천천히 몸을 일으켜 다용도실로 갔다. 한창 때라면 펄쩍 뛰어올라 창틀에서 그를 찾아보련만 나도 이젠 몸조심할 나이다. 난 익숙한 솜씨로 식기세척기에게 자리를 내준 싱크대 서랍을 밟고, 쌓아 놓은 물건 위로 올라갔다. 보통 때는 예서 멈추지만 오늘은 특별히 맨 꼭대기에 있는 휴지 뭉치 위까지 올라갔다. 그래도 그는 이 집에서 그나마 고양이와 소통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닌가? 우리는 인간의 모함과는 달리 철저히 의리를 지킨다. 그래도 위에서 보니 경관이 꽤 괜찮다. 아파트 동 사이의 나무들은 가로등의 그늘을 받아 더욱 우거져 보이고, 자다 깼으면 무서웠을 괴물 모양으로 몇 군데 집에만 불이 켜져 있다. 


내가 처음 거주했던 곳은 나 홀로 떨어진 재개발된 아파트였다. 그녀는 어린 나를 품에 안고 아파트를 한 바퀴씩 돌곤 했는데, 담벼락에는 아낙네들 빨래하고 아이들 물놀이하는 시골 마을 풍경이 그려져 있었다. 난 낯선 자유고양이들의 흔적을 느끼며 그녀의 품안에서 긴장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곳은 골목길을 누비는 상인의 확성기 소리가 심심치 않았고 국경일이면 방송국에서 촬영을 나온다고 국기 게양하라는 재촉이 끊이지 않았다. 다음으로 이사 간 곳은 주상복합아파트의 맨 꼭대기 층이었는데 그녀의 남편이 술 마시고 지르는 고성 외에는 특별한 소음이 없었다. 그러나 바람이라도 몹시 부는 날이면 나는 건물의 미세한 떨림으로 심한 불쾌감을, 때로는 멀미까지 느끼곤 했었다.


나무 밑에 있는 쓰레기통 옆으로 그가 보인다. 멀찍이서 수상하게 쳐다보던 경비원이 다가간다. 이런 시간에 저런 곳에서 담배를 피우니 누군들 다시 보지 않겠는가? 나를 염려함인지, 이웃의 항의를 두려워함인지 밖에서 담배를 피워주니 고맙긴 하다. 어쨌든 그가 그 소리의 정체를 밝히긴 힘들 것 같다. 안타깝다, 내가 인간의 언어라도 안다면 말해 주겠지만. 뭐, 그런 게 한두 개인가…….


우리 고양이들은 사이가 안 좋아도 공존할 수 있다. 같은 장소를 서로 다른 시각에 사용하는 걸 우린 일찌감치 터득했다. 우리는 후각을 통해 다른 고양이 몇 명이 언제 다녀갔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이렇게 우리가 사용한 지 몇 천 년이나 되는 방법을 인간들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겨우 이용하게 되었다. 무선통신의 TDMA가 숱한 예 중의 하나다. 그런데 그들은 지적재산권 관련해서 우리에게 사료 한 알도 지불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어쩌겠는가?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을. 좀 더 세월이 지나면 인간들은 알게 될 것이다. 얼마나 우리 고양이들의 자취가 그물처럼 얽혀서 정교한 지도를 그리고 있는지.


인간들의 둔한 감각으로는 알 수 없겠지만 세상은 항상 냄새로 가득하고 소리로 진동하고 있다. 아파트는 바람만 겨우 빠져 나갈 수 있는, 소리와 냄새로 된 촘촘한 그물이다. 아랫집에서 위쪽으로 빠져 나간 냄새는 외기와 함께 이 집의 아래쪽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그건 다시 윗집의 아래쪽으로 들어갈 것이다. 아파트는 냄새라는 실로 아래위로 감침질이 되어 있는 셈이다. 이게 바로, 이것이 일어나니 저것이 일어난다는 인연생기(因緣生起)가 아니고 또 무엇이랴. 인간 외에 모든 종족은 다 이런 식으로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어찌하여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 제멋대로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굴비 냄새 때문에 중단했던 고민이 떠오른다. 아! 

머리 아프다. 사실 나는 한 달째 인간의 집을 탈출하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증조부님은 악마의 손아귀에서 탈출하신 후에 자유고양이였던 증조모님을 만나셨고,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유복자로 태어난 조부님은 부친의 유지를 계승하여 뼈대 있는 자유고양이 집안의 초석을 놓으신 것이다. 그렇게 번창하던 집안의 며느리였던 어머니는 어느 날 교통사고로 병원으로 실려 가신다. 그나마 다른 인간의 죄를 대속(代贖)하려는 인간들이 있어 병원에서 형제들과 나를 낳으실 수 있었다. 그 후 우리 가족은 ‘분양’이라는 이름으로 뿔뿔이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뼈대 있는 우리 상계 묘(猫)씨 집안에서는 자유고양이들의 지식과 경험이 잘 전승되어 왔고 나는 모친과 헤어질 때 대부분을 습득한 상태였다. 역시 값싼 안락과 진정한 자유는 공존하기 힘들다. 여기는 사방이 벽으로 막혀있다. 도저히 이곳에선 우리들의 지도를 그릴 수가 없다. 여기는 우리 고양이들이 살 만한 곳이, 결코 아니다.


그가 빤히 날 내려다보고 있다. 그도 뭔가 고민이 있는 것일까? 눈을 뜨면 귀찮으니 잠꼬대하는 소리나 한번 내줘야겠다. 여기가 몇 층만 낮았더라도 나는 진작 탈출을 했을 것이다. 배부른 돼지고양이냐, 배고픈 자유고양이냐, 나는 또 다시 오늘의 고민을 내일로 미룬다. 오늘도 역시 별다르지 않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