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한시감상] 꿈에서나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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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감상 - 백아홉 번째 이야기
2015년 4월 16일 (목)
꿈에서나마
꿈속에 너의 모습 가끔은 보았지만
평소에는 또렷치 않아 안타깝더니
웬일인지 이날 밤 꿈속에서는
홀연히 마치 살았을 적 같았네
손잡고 즐기는 모습 눈앞에 선하고
웃으며 말하는 소리 귓가에 쟁쟁한데
건너편 숲 속의 두견새 소리에
놀라 일어나니 눈물만 흐를 뿐
夢汝雖時有
尋常恨不明
那知當此夜
忽復似平生
宛爾提携樂
琅然笑語聲
前林杜鵑哭
驚起淚縱橫
「4월 3일 밤중에 꿈에서 죽은 아이가 곁에서 함께 자다가 이불을 제치고 앉아서 평소처럼 말하고 웃는 것을 보았다.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목소리와 모습은 생생하였는데, 갑자기 놀라 깨니 보이는 것이라곤 적막한 창뿐이고 사방엔 사람 소리 하나 없었다. 그 흔적을 찾아보려 해도 이미 간데없어 멍하니 자리를 쓰다듬다가 베개에 기대어 눈물만 흘리고 있었는데, 홀연히 들려오는 앞 숲의 두견새 소리에 너무도 괴로웠다. 이때의 이런 심정을 진실로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지만 차마 기록하지 않을 수도 없기에 아침에 일어나 쓴다.
[四月初三日夜分 夢見亡兒在傍同宿 披衾而坐 言笑如平生 言則不記 而音容宛然 俄而驚覺 則但見虗窻悄閴 四無人聲 欲覓其蹤 而已無所矣 撫席惝怳 倚枕流淚 忽聞前林杜鵑聲正苦 此時此情 誠不忍形諸言 而亦不忍不志 朝起書之]」
- 송상기(宋相琦, 1657~1723)
『옥오재집(玉吾齋集)』 권3
윗글은 옥오재 송상기가 14세에 홍역을 앓다 죽은 아들을 잊지 못하여 쓴 시이다. 송상기는 이 시 외에도 아들의 첫 번째 기일에 지은 「죽은 아들에 대한 제문[祭亡兒文]」과 10년 후 장지(葬地)를 옮기면서 지은 「죽은 아들을 천장할 때 제문[祭亡兒遷葬文]」에서 여전히 잊지 못하는 부모의 애끓는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도 있듯이 먼저 간 자식을 부모가 어찌 살아생전 잊을 수 있겠는가. 죽은 자식에 대한 애달픈 심정을 읊은 글로는 농암 김창협(金昌協)의 글이 명문으로 알려져 있다. 제문의 일부만 보아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우두커니 외로이 지내고 정신없이 막막하게 살며 마치 가지 없이 쓰러진 나무 같고 불타지 않는 식은 재 같으니 사람이 이렇게 살면서 어찌 즐거울 수 있겠느냐. 그런데도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추우면 옷을 입고 아프면 약을 구하여 구차하게 목숨을 이어가고 있으니, 심하구나! 나의 무디어진 마음이여!…
[…兀兀踽踽 忽忽倀倀 如壞木之無枝 如死灰之不然 人生如此 寧有可樂 然猶飢而求食 寒而求衣 疾病而求藥 以苟延歲月之壽 甚矣 吾之頑也…]” 「망아초기제문(亡兒初朞祭文)」『농암집(農巖集) 권30』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불 꺼진 재와 같아서 더 이상 희망을 찾아볼 수 없다. 인생의 아무 낙을 느끼지 못하고 목석같이 살면서도 생의 기본적인 욕구인 먹고 자고 춥고 아픔을 느끼는 것조차 죄의식을 가진다. 자신의 마음이 무디어져 가고 있다고...
지금도 이러한 큰 아픔을 지니고 살아가는 많은 부모들이 우리 옆에 있다. 어느새 1년이다. 슬프고 원통하고 혹독하다고 느끼는 그들의 고통 앞에 뭐라 위로할 수 있을까. 부끄럽고 미안하고 참담할 뿐이다.
글쓴이 : 김성애(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