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네안데르탈인의 슬픔 (2) 본문
(2)
귀경하는 봄나들이 차량으로 고속도로는 멈춰 있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계절도 몇 번 바뀌어, 딸아이를 못 본 지도 일 년이 되어 간다. 작년 초봄에 딸아이는 한 달 넘게 병실에서 고생하고 있었다. 어차피 직장을 옮길 참이었기에, 나는 이직하기 전에 한 달을 딸아이 옆에 있기로 했다. 그리고 한 달 후, 새 직장으로 옮기자마자 나는 또 3개월의 휴직을 해야 했다.
사람들 속에서 산다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아침 지하철 출근길마다 뛰듯 걸어가는 사람들을 나는 차마 쫓아가지 못했고, 그들이 딸아이를 보내고 빡빡 밀었던 내 머리를 어색해 하듯 나도 그들의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이 답답했다. 그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고, 모든 과거의 삶은 그냥 ‘과거’라는 두 글자 속에 봉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봉인을 떼고, 살아왔던 것처럼 다시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가장 나를 우울하게 했다.
나와 아내는 49재 지내고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아내는 약한 딸아이 노심초사(勞心焦思) 키우느라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지 못했었다. 물론 조금만 먼 지방으로 여행을 가도, 피곤해서 얼굴이 붓던 딸아이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기도 어려웠겠지만. 둘 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 패키지여행을 갔었는데 우리는 거기서 매번 심문을 받아야 했다.
“아이는 두고 왔어요?”
“아이가 없습니다.”
“늦게 결혼했나 봐요.”
“아뇨, 몇 년 있으면 20년인데요.”
그 다음은 다양했다. 애 낳기 위해 ‘전설의 고향’에 나옴직한 노력을 했던 이웃 얘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신랑이 힘없어 보인다며 음식을 내 쪽으로 밀어주기도 했다. 우리도 어떤 때는 그냥 입을 다물어 어딘가 문제가 있는 부부가 돼버리기도 했다. 우리가 어쩌다 사정 얘기를 하면,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위로해 주기도 하고, 절대 양자(養子)는 들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살아온 세월만큼 할 수 있는 위로도 다양했으리라. 어쨌든 이 땅에서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물론, 어감과 어조만으로도 위로가 된 분들이 있었지만.
혹시 그들이 남이라서 그랬을까? 작년에 큰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나이 비슷한 조카들과 술 한잔을 하다가 딸아이 얘기가 나왔다. 그래도 그들은 자형의 아내보다는 슬픈 기색을 띄었다. 묘한 반응은 나이 많은 이들이었는데, 예전처럼 전염병이나 영양실조로 어린아이 사망이 많은 것도 아니건만 몇 분은 못 들은 양 가만 계셨고 심지어 형수 한 분은 보란 듯이 아기를 어르면서, “삼촌, 얘가 OO의 새끼요.”했다. 옆에 있던 조카가 눈짓으로 자기 어머니를 말렸다.
오래 살다 보면 모두 도인이 되어 죽음 보기를 고향집 가듯 해서 그런 걸까? 험한 세상에 오래 고생한 노인의 죽음에 비하면 아이의 죽음은 별 게 아니었을까? 아이는 새로 낳으면 되지만 부모는 돌이킬 수 없어 그런 것일까? 누구를 붙잡고 어느 쪽의 죽음을 선택하겠냐고 하면 아이를 택할까? 사촌형님은 큰어머니 대신 아들을 택했을까? 결국 관심 없는 이들은 다 남이다. 친척이든 그 누구든.
혹시라도 자식이 먼저 가는 건 불효라고 해서, 손아래 아이에게 조의를 표하는 게 어색해서,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글쎄, 효도나 우애처럼 야단치며 가르칠 필요도 없는 게 자식 사랑인데, 그 고통이 너무 견디기 힘들어 그리 말한 걸 생각 없이 그대로 따르겠다면, 그리고 상대의 가장 큰 일에 대해 입을 꾹 다물겠다면 뭐라 할 말은 없다. 그런 무식함과 뻔뻔함에 대해 이젠 분노할 힘조차 없으니까.
자는 줄 알았던 아내가 내가 졸지 않을까 염려하는 듯 말을 걸어왔다.
“자기 수리부엉이라고 알아?”
“뭔 부엉이? 몰라.”
“걔들도 인간처럼 수컷이 열심히 먹이를 물어 오고 암컷은 열심히 새끼만 키우더라.”
딸아이가 떠난 이후로 운전을 즐겨 하지 않는 아내는 미안한 듯 계속 말을 붙였다.
“어제 TV에서 본 건데, 수컷이 먹이를 구하러 가서 안 돌아오는 거야. 암컷은 새끼를 지키느라 우리를 비우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 먹은 새끼는 끝내 죽고 말아. 암컷은 이틀을 꼬박 기다리다 수컷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판단했는지 새끼의 죽음을 확인하고는 우리를 떠나.”
“그래? ……별 얘기도 아니구먼.”
“근데, 떠나기 전에 그 다음 생존과 번식을 위해 죽은 새끼를 먹더라고.”
“……그거 알아?”
“뭐?” 아내는 졸지 말라고 껌을 입에 넣어 주었다.
“남편이 죽으면 애가 없는 경우에는 마누라와 시부모가 유산을 나누게 된다더라.”
아내는 웬 뚱딴지같은 얘기냐는 표정을 짓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애가 있다가 없어진 경우도 마찬가진가? 배에 임신선은 있는데 애는 어디 간 거지?”
정말 이상한 세상이다. 딸아이 보낸 것도 억울한데 아이가 없다고 각종 세금 감면도 줄어들 것이고, 더구나 내가 유언도 없이 이승을 떠난다면 얼마 없는 재산이나마 한몫은 어머니 손을 거쳐 결국은 딸아이 죽음을 일언반구 슬퍼도 않던 그녀에게 갈 것이다. 그래, 그래서 모두 기를 쓰고 남들 사는 대로 살려고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