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천안함 생존자 관련 기사 2편 본문
천안함 생존자는 왜 한국을 떠났을까
변지민 <한겨레21> 기자 | 등록: 2018-07-16 08:13 수정: 2018-07-1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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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853403.html#csidx1a1096beb50b6c3b423394ecac2efe1
“전혀 없었어요. 정신과 상담치료도 제 돈으로 했는데요.” 광수씨뿐 아니라 <한겨레21>과 <한겨레>가 직접 만난 생존자 8명은 “보상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오히려 “뭘 해줬냐”고 되물었다.
진보 성향인 정민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받는 상처가 컸다. 정민씨는 사고 바로 다음 날 동생의 상태를 보고, 또 그의 말을 듣고서 당연히 폭침으로 알고 있었는데 주위의 시선은 영 달랐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동안 거짓말한 게 있으니 믿지 못하는 것도 이해는 가요. 그런데 문제는 그 불신이 정부와 군을 넘어 천안함 생존자한테까지 전가된 거예요. 이 사람들도 피해자인데, 인권 측면에서 바라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가상공간인 온라인조차 함부로 돌아다니기 힘들었다. ‘패잔병’ ‘양심선언하라’는 댓글이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광수씨가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건 2011년 여름이다.
아버지 지인은 한국의 한 언론인에게 이를 이야기했고, 그 언론인은 나름의 각색을 거쳐 “해외 유학 중인 천안함 승조원이 정부의 발표가 사실이 아니라고 실토했다. 곧 양심선언이 나올 것”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방송에서 여러 차례 주장했다.
“처음엔 고소하려고 했어요. 해외에 있는 천안함 생존병이 저 말고 또 누가 있나요. 그 사람은 제게 연락해 사실 확인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오히려 그에게 공감해준 건 프랑스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이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병사를 외면한 한국 정부에 같이 화를 냈고, 파리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치료가 가능한 병원 목록을 뽑아줬다.
천안함 생존장병 PTSD, 이라크전 미군의 7배…“술·약 없인 잠 못자”
정환봉 최민영 기자, 변지민 <한겨레21> 기자 | 등록 :2018-07-16 04:59 수정 :2018-07-1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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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53393.html#csidxb1a377cfa4a733a85eef5ee7ae44ce2
천안함, 살아남은 자의 고통
① “우린 패잔병” 유령처럼 숨쉰다
쿠웨이트 연구진이 걸프전(1990~1991년)에 참전한 뒤 포로로 잡혔다 풀려난 쿠웨이트 군인 5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48%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던 미국 군인 10만3788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거나 치료받은 사람은 1만3205명으로 13% 정도였다. 천안함 생존장병들의 마음속 상처가 적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가까스로 생환한 병사들보다 크고 깊었던 셈이다.
국가로부터 보상 한푼 못 받았지만, 온라인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했다. “보상 많이 받았을 텐데 뭐 (사업이라도) 하는 거 없냐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반박해봐야 관계만 나빠질 것 같아 아무 말 안 했어요.” 의도한 게 아니었는데도, 공창표 하사에게는 만날 사람과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생겨버렸다.
“보수는 저희를 이용할 뿐이었어요. 진보? 그쪽은 저희를 아예 찾지도 않았고요.” 더는 ‘천안함’이라는 주홍글씨를 이고 살 수 없어 망명하듯 프랑스로 떠난 최광수(30) 병장의 말이다. 그는 “도저히 한국에서 살아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모두에게서 버림받고 홀로 견뎌온 8년, 그들의 몸과 마음이 ‘아프다’고 아우성치고 있다.
...그러나 많은 댓글들...
...남들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가 보다. 그래서 내가 지겹도록 외로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