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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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세월호

[퍼옴] 바지선에서 매일같이 기다리던 아버지, 마침내 아들을 만났다

조용한 3류 2014. 6. 9. 22:17

아이의 젯상은 슬프다.


이 세상이 좋은 곳이 아닌데도

아이의 젯상은

과자가 놓여 있는 그 젯상은

정말 기가 차다.




바지선에서 매일같이 기다리던 아버지, 마침내 아들을 만났다


[세월호 참사]292번째 희생자 단원고 안중근군 '야구를 좋아하던 소년'


< 머니투데이 진도(전남)=박소연기자 | 입력2014.06.09 17:52 >


아이는 바다 속에서 오래 기다렸다. 8일 밤, 한 잠수사가 칠흑 같은 바다를 헤쳐 한 아이를 정성스레 안아 올렸다. 그렇게 아이는 54일 만에 바다 밖으로 올라왔다. 현장의 바지선 위에는 그렇게 기다리던 '아빠'가 있었지만 이들은 2시간이 더 지난 후에야 팽목항에서 재회할 수 있었다.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태운 해양경찰 경비정이 사고해역으로 향하고 있다. 등댓길에 안 군의 가족이 아들을 기다리며 가져다놓은 야구화가 빗물에 젖자 누군가 비밀을 씌워놓은 모습이 보인다. /사진=뉴스1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8일 밤 11시20분쯤 세월호 4층 선수 좌측 격실에서 구명동의를 착용한 남성 희생자 1명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DNA 분석을 진행한 결과 단원고 2학년 7반 안중근군(17)으로 밝혀졌다. 7반의 마지막 학생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날 좀 평소랑 다른 징조가 있었어요. 낮에 갑자기 배가 고팠고, 바지에서 수중작업 진행 중엔 갑자기 한동안 정신이 멍해졌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아들이 나오려는 징조였던 것 같아요."


안군의 아버지는 하루 이틀에 한 번 꼴로 바지선에 올랐다. 평소 수육 등 음식을 마련해 해경 등 현장 관계자들과 잠수사들을 챙기고 응원해온 마음 씀씀이로 유명했다. 이날도 저녁 6시반쯤부터 바지에 올랐다. 다른 가족들이 88바지에 있었던 때 홀로 언딘 바지선에서 밤 9시부터 재개된 수중수색을 초조하게 지켜보던 아버지는 밤 11시20분쯤 남성 시신 인양 소식을 직접 전해들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일지도 모르는 이 남성 희생자를 바로 만나볼 수 없었다. 시신이 곧바로 장례지도사가 있는 함정으로 옮겨졌기 때문. 장례지도사들은 시신을 염하고 옷차림과 키, 치아 등 신체 특징 등을 기록해 해경과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게스 허리띠'. 바지선에 오르지 않은 안군의 어머니는 시신 특징에서 '게스 허리띠' 문구를 보자마자 아들임을 단번에 직감했다. 아들이 수학여행가기 전에 사준 허리띠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소식을 알리고 팽목항 신원확인소로 달려갔다.


진도 사고해역에 함께 있던 안군과 아버지는 결국 따로따로 팽목항에 왔다. 안군은 해경 P정에 실려 이튿날 새벽 1시8분에 팽목항에 도착한 뒤 시신 안치소에서 검시·검안을 받았다. 바지선 위에 있던 아버지는 해경 경비정을 타고 1시18분에야 팽목항에 돌아왔다. 아버지가 안군과 다시 만난 건 새벽 1시 반이 넘어서였다. 아버지는 "2시간 동안 말할 수 없이 초조하고, 가슴 졸였다"고 말했다.



전남 진도군 팽목항과 실내체육관 곳곳에 놓인 안군을 향한 기다림의 흔적. 안군의 생환을 기대하며 두산베어스에서 전달한 유니폼(왼), 안군의 어머니가 직접 '아들아 좋아하는 야구셋트 준비했단다'라고 적은 노란 리본(가운데), 안군을 기다리며 가족이 놓아둔 야구화(오). /사진=뉴스1



진도 실내체육관 안군 가족 자리엔 '21번' 등번호와 안군의 이름이 적힌 두산베어스 유니폼이 늘 함께했다. 안군은 두산베어스를 좋아했다. 아버지를 따라 야구장도 자주 찾았다. 두산 구단은 안군의 생환을 기원하며 '불사조' 박철순 선수의 영구 결번인 21번 등번호가 적힌 유니폼을 선물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달 체육관을 찾아 이 유니폼에 얽힌 사연을 듣고 눈물을 쏟기도 했다.


안군의 부모는 54일간 변함없이 성실하게 아들을 기다렸다. 바지선뿐 아니라 팽목항 방파제에도 거의 매일 올라 눈물로 아들 이름을 불렀다. 어머니는 방파제 난간에 '아들아 좋아하는 야구세트 준비했단다'라고 적힌 노란 리본을 달았다. 아버지는 "아들을 찾고 싶은 마음에 최대한 자주 바지선에 올랐다"고 말했다. 긴 기다림에 지쳐 지난달 5월 말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지만 아들을 향한 기다림은 그칠 줄 몰랐다.


안군의 아버지는 실종자 가족 대표로 다른 가족들도 살뜰히 챙겨왔다. 지난달 19일 대통령 대국민 담화 직후 "실종자 구조에 대한 부분은 언급조차 없었다"며 "정부는 실종자 구조라는 대원칙을 외면하지 말라"고 기자회견문을 직접 읽으며 호소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남은 가족들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아버지는 "늦게나마 찾았으니 기쁘지만 먼저 올라가 미안하다. 남은 가족들도 빨리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며 무거운 마음을 전했다. 아들을 향해서는 "사랑했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쏟았다.


9일 오후 5시 기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사망자는 292명, 실종자는 12명이다.


머니투데이 진도(전남)=박소연기자 soyunp@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