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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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근교 아파트 주민 절반이 중국인.. 공존과 공생 사이
조기원 입력 2019.11.24. 09:16 수정 2019.11.24. 09:26 댓글 691개
[토요판] 조기원의 100세 시대 일본 ⑫ 고령자와 외국인의 동거
도쿄 근처 시바조노 단지. 젊은 중국인, 고령 일본인
한때는 헤이트 스피치. 교류로 혐오는 사라져.
"공존하지만 서로 돕는 공생까지는 아직 못 가"
"주변부로 밀렸단 감각, 미국 백인의 심정과 닮아"
‘이 얼 싼 쓰’(하나 둘 셋 넷)
지난 11일 오전 11시께 일본 수도권인 사이타마현 가와구치시의 시바조노 아파트 단지 중앙 광장에서 낭랑한 중국어가 들렸다. 할머니는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데리고 나와 공을 튀겨 보이면서, 중국어로 숫자를 셌다. 직장인은 출근한 시간인 평일 오전 광장 안은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중국인 할머니는 광장에 나온 다른 할머니 한명과 중국어로 이야기를 나눴다.
시바조노 단지는 5천명 가까운 아파트 단지 주민의 절반가량이 외국인으로 일본에서 유명하다. 가와구치시 인구조사에 따르면 시바조노 지역 외국인 인구는 올해 2692명으로 일본인 2242명보다 많다. 시바조노 지역 인구 대부분은 시바조노 단지 주민이다.
단지 안 여기저기에는 중국어로 쓴 안내문이 있었다. 광장 주변 기둥에는 심야나 이른 아침에 소음이 들린다는 민원이 있으니 “주의를 해달라”고 쓴 중국어 안내문, 쓰레기 수거장에는 분리수거 방법을 일본어와 함께 중국어, 영어로 쓴 안내문이 있었다. 단지 상가에도 일본 음식점은 없었고, 중국 음식점 몇곳과 한국 음식점 한곳이 있었다. 단지 주변에는 원래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었지만 일본인 거주민이 고령화되고 아이들이 줄면서 문을 닫았다. 단지 안에 어린이집이 한곳 있는데, 중국계가 운영하는 곳이다. 단지 안을 걸어봐도 중국어로 대화하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일본 다른 지역에서도 일어나는 일”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이곳을 위험하고 쓰레기가 넘치는 곳이란 식으로 보도하는 언론이 많았다. 우익들이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단지 안 벤치에서 “더러운 중국인은 돌아가라”는 낙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시바조노 단지 주민자치회 임원인 오카자키 히로키(38)는 “낙서는 2014년 연말 때 일이다. 언론에서 선정적인 보도가 나오고, 외부 사람들도 자주 오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주민들이 조금씩 전달하면서 이런 비방·중상은 현재는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시바조노 단지가 주목받는 이유는 일본 사회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어서다. 시바조노 단지만큼은 아니지만, 고령자가 대부분인 일본인 주민과 30~40대 위주인 외국인 주민이 공존을 모색하는 일은 일본 다른 곳에서도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시바조노 단지에서 차별적인 공격은 없어졌지만, 일본인과 중국인 주민의 공생은 아직 모색하는 단계다. 오카자키는 일본 사설 교육기관인 마쓰시타 정경숙 3학년 때 시바조노 단지를 ‘차이나타운’이라고 묘사한 주간지 기사를 보고 주민자치회를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2014년 시바조노 단지에 입주했다. 현재는 주민자치회 임원을 맡고 있다. 자치회 임원 대부분은 단카이 세대(일본판 베이비붐 세대)인 70~80대 일본인이었다. 최근에는 그처럼 젊은 일본인뿐만 아니라 중국인 임원도 5년 내리 나왔다.
오카자키는 시바조노 단지의 현재 상황을 공존에는 가까워지고 있지만 공생은 아직 아닌 단계로 진단한다. “공존은 일상생활에 별다른 문제 없이 서로 조용히 살아가는 것이다. 공생은 서로 협력하는 관계다. 공존이 안 되면 공생도 안 된다. 다만 공생은 무리하게 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시바조노 단지 일본인 주민과 중국인 주민이 적극적으로 교류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구조가 있다고 했다. 일본인 주민은 대부분 고령자인데, 중국인 주민은 어린 자녀를 키우는 젊은 세대라서 서로 생활상 접점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또 중국인 주민은 입국 초기 이곳에 들어왔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다. 오카자키는 “중국인 주민은 길어야 3년 정도 살다가 이사를 나간다. 무리하게 교류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교류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교류할 수 있도록 장소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돌아다니며 상황을 설명하면서, 시바조노 단지의 주민 간 교류 활동을 돕는 대학생과 고등학생 단체인 ‘시바조노 가교 프로젝트’가 생겼다. 그는 시바조노 단지가 “결코 일본에서 동떨어진 사례가 아니다”라며 “일본 다른 곳에서도 일어나는 일이 좀 더 부각돼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바조노 단지에 중국인이 많이 거주하게 된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입지와 임대 조건이 주요 배경으로 추정된다. 시바조노에서 도쿄 도심까지는 1시간이 걸린다. 비교적 출퇴근하기 용이하면서 임대료가 도쿄보다 싸다. 또한 시바조노 단지는 공공기관 성격을 지니는 도시재생기구가 관리하는 아파트 단지다. 외국인이 일본에서 집을 구하면 일본인의 보증을 요구하거나 아예 외국인에게 임대하지 않는다고 거부당하는 경우도 있다. 도시재생기구는 소득 기준 등 조건을 충족하면 외국인이라도 임대를 한다. 또한 중국인 커뮤니티가 형성된 장점이 커져서 중국인 주민이 더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 주민 상당수는 아이티(IT) 기업 노동자다.
최근 <시바조노 단지에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을 낸 <아사히신문> 기자 오시마 다카시(47)는 2017년부터 단지 주민이 됐다. “도쿄의 임대료가 비싸서 이사를 생각하던 중에 시바조노 단지 이야기를 듣고 집을 구했다”며 “인터넷에서는 외국인이 많아서 문제가 많다는 식으로 나와 있으나 살아보니 크게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특파원 생활을 했고, 아직 자녀들이 사는 미국에서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일어난 변화도 입주를 결심한 이유다.
일본 수도권인 사이타마현 가와구치시의 시바조노 아파트 단지에 있는 어린이집은 중국계가 운영한다. 아이가 있는 중국인 거주자가 많아서다. 조기원 특파원
일본인 주민의 ‘떨떠름한 감정’
오시마는 “(시바조노 단지) 일본인 주민과 미국 백인들의 심정이 매우 닮았다”고 했다. “미국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 지역 백인들은 자신들의 나라였는데 왜 이렇게 (외국인이 증가) 되었을까, 예전엔 자신들이 중심이었는데 주변으로 밀려났다는 감각이 있다. 일본인 주민들도 자신들의 단지였는데 자신들이 중심이 되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한다는 기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일본인 주민이 자신에게 “우리는 나이 들고 소수자가 됐지만 중국인은 오히려 젊고 돈도 있지 않으냐고 호소했다”고 전했다. 그는 시바조노 단지를 외국인이 많아 문제가 많은 곳으로 보거나, 다문화 교류의 긍정적 사례라는 식으로 어느 한 면만 부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현실은 그 중간쯤에 있다고 했다. 그는 “일본인과 중국인이 실제로 그렇게 대립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별개로 산다”며 “일본인 주민 사이에는 막연한 불안과 불만이 있다. 나는 그것을 ‘떨떠름한 감정’이라고 읽었다”고 말했다.
오시마와 오카자키는 일본인 주민과 중국인 주민의 교류를 상징하는 행사로 오본(한국의 추석과 비슷한 명절로 양력 8월15일 전후) 마쓰리(축제)를 든다. 일본인 주민들이 마쓰리를 준비해왔으나 최근에는 중국인들도 조금씩 준비에 참여하고 있다. 고령의 일본인 주민들 힘만으로는 마쓰리를 계속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오시마는 “젊은 중국인들이 준비와 운영에 참여하게 해서 마쓰리를 계속했으면 한다, 일본인끼리 (마쓰리를 계속 운영) 했으면 좋겠다, (마쓰리를 아예) 안 했으면 좋겠다 등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마쓰리를 계속) 하고 싶다. (이전에도 개인적으로 아는 중국인에게) 말을 걸면 도와주고는 했다”고 말했다.
(가와구치/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