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퍼옴] 고통에는 뜻이 있다 본문
고전산문 2020년 10월 21일(수) | 오백서른 네번째 이야기
고통에는 뜻이 있다
글쓴이 : 박수밀
번역문
산에 올라가 옥을 캔 뒤에야 범을 만날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알게 되고, 바다에 들어가 진주를 캐낸 후에야 물속의 위험함을 두려워하게 된다. 이 괴물이 작은 못에서 고통당할 때 기린과 봉황이 어찌 하늘 못의 용보다 어질지 못했겠는가? 그들이 이 괴물에게 어질지 못했던 것은 작은 못에 사는 고통을 몰랐기 때문이고 또 구해 줄 방법도 없었던 것이다. 저 하늘 못의 용 또한 어찌 기린과 봉황보다 어질었겠는가? 그가 괴물을 도와준 것은 분명 하늘 못의 용도 작은 못에서부터 자라 그 재주를 이루었기에 괴물의 고통을 잘 알았던 것이다. 괴물의 고통을 잘 알고 도와줄 방법이 있었는데도 끝내 도와주지 않았다면 하늘의 처벌을 못 면했을 것이다. 신기하구나! 이 괴물이 기린과 봉황에게 도움을 구했을 때 괴물이 비를 내리는 재능을 이루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하늘은 장차 이 괴물에게 마침내 큰 임무를 맡기려 했기에 처음엔 곤궁하게 했고 또한 큰 고통을 준 것이다. 이 괴물이 극심한 고통을 당하자 큰 뜻을 품게 되었고 마침내 그 뜻을 성취했다. 뜻을 품은 사람은 끝내는 일을 성취한다는 말이 나를 속이지 않았음을 알겠다.
원문
登山採玉, 然後知其蹈虎尾之難, 入海採珠, 然後畏其探龍穴之危也. 方是物之困於尺澤也, 麟鳳豈不仁於天淵之龍哉? 所以不仁於是物者, 由不知尺澤之苦, 而又無可救之道也. 彼天淵之龍, 亦豈仁於麟鳳哉? 其所以濟之者必天淵之龍, 亦自尺澤而成其材, 熟知其苦者與. 熟知其苦, 有可救之道, 而終莫之救也, 則其無天責乎? 異矣哉! 是物之求救於麟鳳也, 誰意其能成吐雨之材乎? 天將使是物而終任莫大之責, 故其初之窮困也, 亦有莫大之苦矣. 是物之有莫甚之苦, 懷莫大之志, 而終成其志, 知有志者事竟成之語不我欺也.
- 최충성(崔忠成, 1458-1491), 『산당집(山堂集)』권3, 「잡설(雜說)」
해설
고난 없는 인생은 없다. 선한 사람이든 못된 인간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남자든 여자든 모든 인생은 어느 때 반드시 고난과 맞닥뜨린다. 고난의 크기는 제각기 다를지언정 누구도 예외는 없다. 고난이 찾아오면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도 있다. 회피하는 사람도 있고, 맞서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슬피 운다.
왜 인간은 고난을 겪어야 할까? 고난이 주는 뜻은 무엇일까? 여기에 한 편의 우화가 있다.
깊은 산 작은 못에 한 마리 괴물이 살고 있었다. 괴물은 굼실굼실 느릿느릿했다. 날개가 없었지만 날 수는 있었고, 발굽이 없었지만 걸을 수는 있었다. 작은 못 안에 숨어 지냈지만 특이한 몸과 굼뜬 행동 때문에 툭하면 까치와 다람쥐가 놀려댔다. 괴물은 울적하고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왜 하늘은 나만 요 꼴로 만들어 놀림 받게 했을까?” 그러나 다시 생각을 돌이켰다. “아냐, 하늘이 세상을 만들 때 차별할 리가 없어. 나도 훗날 반드시 쓰일 날이 있을거야.” 마침내 얕은 연못에 숨어 지내며 성공할 날을 기다렸다. 그러나 못의 물은 점차 말라갔고 더 이상 숨을 수조차 없었다. 괴물은 탄식했다. “죽는 것은 아쉽지 않으나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죽는 게 애석할 뿐. 크게 울어나 보련다.” 괴물의 울부짖음은 사방에 흩어졌다. 그러나 봉황은 그 소리가 듣기 싫다고 도와주지 않았고 기린은 그 모습이 꼴 보기 싫다고 구해주지 않았다. 그들이 도와주지 않은 건 자신들이 괴물과 같은 부류가 아니다 보니 작은 못에서 사는 고통을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괴물의 서럽고도 구슬픈 울음소리는 하늘의 못에 사는 용에게도 들렸다. 하늘 용은 괴물이 불쌍해서 넉넉하게 비를 내려주었다. 내린 비는 작은 못의 물을 넘치게 했고 깊은 못으로 이어졌다. 괴물은 물길을 따라 깊은 못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마침내 스스로 성취하여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이후로 용이 된 괴물은 가뭄이 들 때마다 비를 내려 만물을 살려냈다. 예전에 그를 놀렸던 까치와 다람쥐, 그를 모른 척했던 기린과 봉황도 그 괴물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그 은혜가 괴물의 도움인 줄 전혀 알지 못했다.
인용문은 이 우화를 품평한 말이다. 봉황과 기린과 용은 모두 괴물을 도와줄 충분한 능력이 있는 존재들이다. 왜 봉황과 기린은 고통받는 괴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음에도 매몰차게 외면했을까? 작은 못에 사는 괴물의 고통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만큼만 남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이다. 월세 낼 돈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굴러본 뒤에야 배고파 우는 이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고 혹독한 이별의 아픔을 겪은 후에야 비슷한 경험으로 괴로워하는 이의 아픔을 온전히 공감한다. 고통과 아픔을 경험한 자가 그 고통을 똑같이 겪고 있는 남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 고통에 손을 내민다. 하늘의 용은 작은 못에 사는 고통을 겪으면서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기에 괴물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고 도와줄 마음을 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괴물은 그토록 혹독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을까? 작가는 말한다. 하늘이 괴물에게 큰 임무를 맡기기 위해 곤궁한 생활을 하게 했고 큰 고통을 주면서 기대를 품게 하고 끝내 이루도록 했다는 것이다. 『맹자』,「고자 하」에서는 말한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그의 뼈를 수고롭게 하며 그의 육체를 굶주리고 그의 몸을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행하는 바를 어긋나게 한다. 이는 그의 마음을 분발하게 하고 성질을 참게 하여 그가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게 하고자 함이다” (참고. blog.daum.net/silent.ryu/47?category=1930428)
우리가 태도를 바꿀 수 있는 혜안이 있다면, 고난은 기회이자 훈련이고 변장된 축복이다.
인간의 진실과 순수가 가장 잘 드러내는 때는 시련과 고통 앞에 맞닥뜨렸을 때다. 그 고난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깊은 세계로 들어가기도 하고 그저 그런 인생으로 남기도 한다. 도자기는 수천 도의 고온을 견딜 때 마침내 명품이 된다. 반복되는 풀무질과 두드림을 견딜 때 강한 칼이 완성된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때로는 불속에 들어가는 고통을 맛보고 두드려 맞는 시련도 겪는다. 혹독한 시련과 고통의 과정을 견디어내며 마음을 분발하고 성질을 참는 과정에서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인생은 더욱 단단해진다. 편안한 삶에 큰 인물은 없다. 고난을 당당히 이겨낸 자만이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내 의지를 넘어선 불가항력의 고난이 찾아올 때, 선을 행하다 고난이 찾아올 때, 관계의 깨어짐으로 고통이 찾아올 때, 바라는 바가 뜻대로 되지 않아 고통이 찾아올 때, 다음 구절을 떠올리며 인내하면 좋으리라. “거대한 슬픔이 성난 강처럼 평화를 파괴하는 힘으로 그대의 삶으로 쳐들어오고 소중한 것들이 눈앞에서 사라져 갈 때, 매 힘든 순간마다 그대의 마음에 말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글을 쓴 작가는 조선전기의 학자인 산당서객(山堂書客) 최충성(崔忠成, 1458-1491)이다. 도학자인 김굉필을 스승으로 모셨다. 산당은 어린 시절부터 병약했다. 건강을 돌보기 위해 전국의 명승지와 산의 절을 돌아다니며 책 읽기를 좋아했다. 그도 과거를 보아 꿈을 실현하려는 포부가 있었다. 졸음을 쫓아내기 위해 겨울에도 불을 넣지 않았고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하고자 창문 가까이서 책을 읽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몸은 축나고 병약해졌다. 땀을 흘리면 병이 낫는다는 주변의 권유로 한증막을 지어놓고 살았으나 병을 더 키우고 중풍까지 걸려 서른네 살에 세상을 떠났다. 안타깝게도 평생 과거 합격의 일차 관문인 향시조차 합격하지 못했고 끝내 아무런 벼슬도 하지 못했다. 일남일녀의 아버지로서 집안을 잘 이끌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겠으나 하늘은 그를 돕지 않았다. 윗글의 후반부에서 산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비가 큰 도에 뜻을 두고 먹고 입는 것조차 잊었으나 결국 굶주림과 추위의 고통을 당해 깊은 병을 얻게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다. 하늘의 용에 뜻을 둔다면 도와줄 방법이 있는 자가 그 사정을 잘 살피고 손을 내밀고 다가가 어진 행동을 해주지 않을까?” 이는 산당 자신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끝내 품은 뜻을 성취하지 못하고 떠나갔다. 하늘이 산당을 속인 것일까, 그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 그가 쓴 「산당서객전(山堂書客傳)」을 읽어보건대 그는 과거를 통한 출세보다는 완전한 인격체[성인]를 꿈꾼 사람이었다. 이에 산당서객을 추모하고 나 자신을 위로한다.
글쓴이 박수밀(朴壽密)
고전문학자
주요 저서
『열하일기 첫걸음』, 돌베개, 2020
『오우아 : 나는 나를 벗삼는다』, 메가스터디북스, 2020
『리더의 말공부』, 세종서적, 2018(공저)
『옛 공부벌레들의 좌우명』, 샘터, 2015
『고전필사』, 토트, 2015
『알기 쉬운 한자 인문학』, 다락원, 2014
『박지원의 글 짓는 법』, 돌베개, 2013 외 다수의 저역서와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