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퍼옴] 교황 "실패의 무게 느낀다"…캐나다서 원주민 학대 거듭 사과 본문
교황 "실패의 무게 느낀다"…캐나다서 원주민 학대 거듭 사과
원주민 사회와 캐나다에선 '미흡한 사과' 비판도
송고시간 2022-07-29 05:13 | 연합뉴스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프란치스코 교황은 28일(현지시간) 과거 캐나다 가톨릭 기숙학교들의 원주민 아동 학대에 대해 또 사과했다.
캐나다를 방문 중인 교황은 이날 퀘벡주 퀘벡시티의 한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악(惡)의 스캔들과 우리 원주민 형제자매의 육신으로 상처입은 그리스도의 몸을 마주하면서 우리는 깊은 실망을 경험했고 실패의 무게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교황은 "이 모든 일이 대체 왜 일어났는가, 어떻게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고 반문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이날 발언은 원주민 학교에서 벌어진 학대 사건들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집단적 실패에 대한 교황의 가장 강도 높은 발언 중 하나라고 로이터는 평가했다.
사실상 캐나다에서 '사죄 투어'를 하고 있는 교황은 지난 25일 앨버타주 매스쿼치스의 옛 기숙학교 부지를 찾아 "그토록 많은 기독교인이 원주민들을 상대로 저지른 악에 대해 겸허하게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이날 퀘벡시티 미사에도 1천400개 좌석 중 4분의 3을 기숙학교 피해자 등 원주민들에게 배정하는 등 사과의 뜻을 전달하는 데 주력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들을 포함한 원주민 사회는 교황의 사과가 충분하지 않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교황이 '많은 기독교인들의 잘못'이라고만 언급하고 가톨릭 교회 차원의 조직적인 책임까지는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퀘벡시티 미사에서는 원주민 여성 두 명이 교황에게 과거 신대륙에서 원주민들의 땅을 차지해도 좋다는 취지의 15세기 칙령을 공식 취소해줄 것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펼치기도 했다.
원주민들뿐만 아니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전날 "용서를 비는 것은 사건의 끝이 아니라 출발점, 첫 단계일 뿐"이라며 가톨릭 교회에서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지적했다.
캐나다에서는 지난 1870년부터 모두 15만 명 이상의 원주민 아동이 부모와 강제로 분리돼 기숙학교에서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면 구타를 당하고 밥을 굶는 등 심한 학대를 당했다.
원주민 강제 동화를 위한 이러한 기숙학교 프로그램에서 피해 아동들은 성폭력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firstcircle@yna.co.kr
‘참회의 순례’, 그러나 절반의 참회
2022-07-29 (금) | 권정희 논설위원 | 한국일보
(오피니언) 고령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캐나다를 방문했다. 85세의 교황은 만성신경통 등 노환으로 건강이 좋지 않다. 특히 무릎이 안 좋아서 지팡이나 휠체어에 의지하지 않고는 거동을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는 지난 24일부터 29일까지 장거리를 이동하며 캐나다 여러 곳을 순방했다. 가톨릭의 수장으로서 캐나다 원주민들에게 해야 할 사죄를 미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순방을 그는 ‘참회의 순례’라고 이름 붙였다.
역사에는 진실과 대면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영원할 듯 기세등등하던 흐름은 어느 순간 기가 꺾이며 방향을 바꾸고, 새롭게 태동된 흐름은 역사의 수면 아래 깊이 묻혀 있던 진실들을 불러낸다. 캐나다 역사상 가장 큰 오점인 원주민 아동 기숙학교의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여러 기숙학교 부지에서 암매장된 어린이 유해들이 줄줄이 발굴되었다. 지금까지 대략 1,200구. 그 참혹함에 캐나다는 경악했고, 그 참혹함을 살아내야 했던 원주민들은 한 맺힌 분노가 폭발하는 고통을 겪었다.
캐나다 정부는 188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원주민 아동들을 강제 수용하는 기숙학교 시스템을 운영했다. 명분은 원주민 아동들을 백인 기독교문화에 동화시키겠다는 것. 하지만 본질은 원주민 정체성 말살, ‘문화적 집단학살’이었다. 캐나다의 초대총리인 존 A 맥도널드가 당시 백인정서를 잘 보여주었다. 1883년 그는 의회에 기숙학교 시스템의 목적을 설명했다.
“학교가 인디언 보호구역에 있으면 아이는 부모, 즉 야만인과 같이 살게 된다. 읽고 쓰기를 배운다 해도 습관과 훈련, 사고방식은 인디언식이 된다. 그러니 아동들을 학교에 집어넣음으로써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나 백인들의 습관과 사고방식을 배우게 해야 한다.”
이후 근 100년 동안 대략 139개 기숙학교에 원주민 아동 총 15만명이 수용되었다. 아이들은 부모는 물론 형제들과도 분리되었다. 학교는 아이들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바꾸고, 원주민 언어사용을 금지했으며,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고유 언어를 쓰면 굶기거나 매질을 했다. 비좁고 열악한 시설에서 전염병이나 영양실조, 육체적 정신적 성적학대는 일상이었다. 아이들은 폐렴 등 병으로 죽고, 화재나 사고로 죽고, 견디다 못해 자살하고, 도망가고 …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진 아이들이 4,120명. 실제로는 족히 1만 명은 될것이라고 원주민측은 추산한다. 퍼스트 네이션, 메티스, 이누이트 등 원주민 커뮤니티에 알콜 및 마약중독, 자살이 만연한 것은 어린 시절 가족 없이 기숙학교에서 겪은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들 기숙학교의 대다수를 운영한 것이 가톨릭 교회였다. 기숙학교 피해자들의 집단소송 결과 2008년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설립되면서 해묵은 참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충격을 몰고 왔던 암매장 유해들은 지난해 레이더 투시장치로 과거 기숙학교 부지들 땅속을 들여다보면서 발견되었다. 아이들이 죽으면 학교 측이 경비를 아끼느라 암매장했고, 사제들에게 성폭행 당한 소녀들이 낳은 아기들 역시 암매장되었다는 등 원주민들만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실체를 드러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너무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원주민을 상대로 저지른 악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며, 가톨릭 선교사들이 유럽 열강의 식민주의 사고에 동조하며 캐나다의 참혹한 동화정책에 협력한 데 대해 사죄한다고 했다. 원주민 커뮤니티는 “50년 기다렸던 사죄”라고 환영하는 한편 관련 교도들을 대신한 사죄였을 뿐 가톨릭교회 자체의 사죄는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절반의 참회라는 것이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발견’이었다. 우리는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배웠다. 당시 남북미 대륙에는 1억명, 전 세계 인구의 1/5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원주민들이 태곳적부터 살고 있던 곳을 ‘발견’이라니… 유럽기독교 중심 사고방식의 결과이다.
15세기 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유럽제국들이 경쟁적으로 식민지를 확장했을 때, 식민주의에 정당성을 제공해준 것은 가톨릭교회였다.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이듬해인 1493년 교황 알렉산드르 6세의 교서 등 일련의 교황칙령은 ‘발견 독트린’이라는 국제법리를 만들어냈다. 기독교도가 차지하지 않은 땅은 ‘테라 눌리우스(terra nullius)’ 즉 주인 없는 빈 땅이니 처음 발견한 유럽인이 차지해도 된다는 바티칸의 승인이다. 이교도 원주민은 단지 거기 살고 있을 뿐, 야만인인 그들을 땅의 주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이들을 적극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교화하라고 교황은 명했다. 식민지 개척 현장마다 선교사들이 동행했던 이유이자 백인우월주의의 뿌리이다. 캐나다 원주민 커뮤니티는 교황이 가톨릭교회 전체로서 사죄하고 ‘발견 독트린’을 무효화하기를 기대했지만 교황의 사죄는 거기에 미치지 않았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무오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발견 독트린’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몰아내는 법적 근거가 되기도 했다. 아울러 19세기부터 20세기 미국은 최소한 367개 인디언 아동 기숙학교를 운영했다. 그 속에는 또 얼마나 어두운 과거가 담겨있을 것인가. 진실은 언젠가는 모습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