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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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
성질이 급한 편이었다. 아니, 이 말보다는 꾸준히 하는 걸 잘 못한다, 가 적절한 것 같다. 그러니 대성(大成)은 초저녁에 글렀고, 잘못하면 별 나아지지도 못하고 이번 생을 마칠지 모르겠다.
나란 놈이 그렇다는 게 훤히 드러나는 때가 방학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방학을 하자마자 숙제를 하루나 이틀 새에 끝내고 마음 편하게 지냈는데, 점점 숙제 양이 많아지고 실험이나 실습 등이 추가되자 한 번에 끝내기가 불가능해졌다. 또 어머니를 돕는 착한(?) 아들이었던 까닭에 방학을 하면 실내화나 가방 등을 직접 빨았었는데 그게 마르기를 기다리는 게 그렇게도 어려웠나 보다. 가방을 빨고 하루는 기다려 준 것 같다. 그래도 바싹 마르지가 않자 그냥 가방을 묶어서 벽장 속에 넣어버리고는 신경을 꺼버렸던 것 같다. 개학을 앞두고 가방을 꺼내자 당연히 쉽게 사라지지 않는 쉰내 때문에 다시 가방을 빨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내가 시간이 걸려도 꾸준히 하면 효과가 있다는 걸 처음 느낀 건 외화 '600만불의 사나이'와 연관이 깊다. 주인공 스티브 오스틴에게는 무슨 말 끝에 '뭐 어때?" 하는 식으로 왼쪽 눈썹만 위로 올리는 표정이 있었다. 그게 그렇게 여유 있고 멋있게 보였나보다. 그래서 이걸 연습하는데 그런다고 한쪽 눈썹만 쉽게 움직일 리가 없었다. 내가 하도 열심히 찡긋거리고 있으니까 한 친구 녀석이 자신은 그건 안 돼도 귀는 움직일 수 있다며 토끼가 아니건만 한쪽 귀만 씰룩씰룩 하고는 지나가버린 기억이 난다. 그러나 아무리 인류가 진화해서 더 이상 쓰지 않는 근육이라고 하지만 한 달간의 연습 끝에 이변이 일어났다. 지금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왼쪽 눈썹만 찡긋거리고 있다. 한 달이면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추억하면서. 그러나 이 교훈은 나의 전반적인 삶으로 확장되지는 못했다.
두 번째 일은 이사 온 집에 아버지 문패를 달던 때에 일어났다. 나는 본드가 든 튜브 뒷면에 쓰여 있는 대로, 정말 쓰여 있는 그대로, 본드를 문패에 바르고는 따악 3분을 기다렸다. 사실 그런 게 나한테는 무척 어려웠었던 것이다. 나는 자타가 거의 인정하는 대로 고지식한 사람인데, 그런 일을 할 때면, 왜 2분 30초는 안 되고 3분만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바람에 나는 비행기나 탱크 같은 플라스틱 모델을 만들 때도 깔끔하고 단단하게 조각을 붙였던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데 그 문패를 정말 고지식하게 따악 3분을 기다렸다가 문 옆의 돌기둥에 붙이니, 말 그대로 철석같이 붙어 요지부동 하는 게 아닌가? 난 그때 2분 30초와 3분의 차이를 정말 뼈저리게 느꼈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그 이상으로 내삶에 변화를 주지는 못했다.
세 번째 사건은 분가를 해서 나갈 때였다. 새로 이사를 했는데 욕조 주변 실리콘에 검은 곰팡이가 무척 심했다. 솔에 락스나 세제를 묻혀서 벅벅 문질러도 극적인 효과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디서 들은 대로 휴지를 뜯어 실리콘 위에 길게 놓고 락스를 그 위에 골고루 적셨다. 그리고 정말 대단한 인내심으로 하룻밤을 내버려 두었다. 그 다음날, 언제 그랬냐는 듯 하얗게 반짝이는 실리콘 고무를 보고는 정말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느끼며 감탄을 했었다.
그런데 그런 교훈이 몇 번에 걸쳤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급하다. 예를 들어 노트북이 열을 받아 전원이 나가면(이해가 안 가는 분들은 그런 노트북이 있다고 가정하면 된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충분히 식혔다가 수행했던 작업이 과부하가 걸린다는 걸 고려해서 분리하는 등의 적절한 조치를 할 텐데, 난 여전히 급하다. 켰다가 다시 똑같은 작업을 시작하다가 다시 꺼뜨리고, 조금 더 기다리다가 다시 켜고 또 동일 작업을 시도하다가 또 꺼뜨린다. 그러고는 기껏 한다는 게 이놈의 노트북을 부숴버리지 않는 것만 해도 나는 참 좋은 성격의 소유자라고 자위한다. 나는 결국 그 짓을 두어 번 더 한 다음에야 어쩔 수 없이 합리적인 처리를 따르게 된다.
남들은 날 보고 날파리가 아니라고 하지만, 실상은 이렇다. 그래서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