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맥성의 하루 (2) 본문
그해 7월에 선제께서 한중왕이 되신 이후, 형주성의 관공은 명을 받들어 위(魏)의 번성을 공략하였다. 위왕 조조가 보낸 우금을 생포하고 방덕을 참하였으니, 그 위세에 놀란 조조가 천도(遷都)를 고려한다는 소문이 서천(西川) 지방에까지 퍼졌다. 관공은 관흥을 성도(成都)로 보내 번성 공략의 공(功)을 고해 왔고, 조조는 서황을 대장으로 삼아 다시 번성으로 원군을 보냈다.
번성 싸움의 승전보는 물론, 형주성 방비를 위해 봉화대를 쌓아 오(吳)의 침공을 대비한다는 보고에, 선제께서는 이제 형주의 근심을 덜었다고 매우 기뻐하시며 스승을 바라 보셨다. 그러나 스승께서는 관흥을 위로해 숙소로 보내자마자, 내게 그 밤으로 형주행을 분부하셨다.
“현정, 나는 오히려 형주의 승리가 걱정이 되는구나. 운장(雲長)이 자꾸 오를 업신여기고 있고 큰 승리로 인해 자부하는 마음이 더 커졌을 테니, 오가 다른 생각을 한다면 앞뒤로 적을 맞을 것이 아닌가? 게다가 지난밤에 천문을 보니 운장의 운이 좋지만은 않구나.”
나는 스승의 지나친 걱정이라고 생각했지만 내색을 않고 할 일을 물었다.
“우리의 세작(細作)들이 낱낱이 알려오고 있지만 서천과 형주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네게 금낭(비단주머니)을 두 개 줄 테니 절대절명의 순간에만 열도록 해라. 또 네가 형주의 지리에도 밝으니 모든 걸 각별히 주의해서 판단하도록 해라.”
나는 성도를 떠나 밤낮으로 말을 달렸다. 형주의 경계에 이르렀을 때, 형주가 함락되고 관공은 위와 오에 협공을 당해 생사를 알 수 없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문을 접했다. 그리고 곧 이것이 소문이 아니라 홍수처럼 밀어닥친 현실임을 알 수 있었다. 산 위에서 오나라 병사들의 움직임을 보고는 관공이 맥성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나는 산속 샛길을 이용하여 다행히 포위되기 전에 성에 다다를 수 있었다.
“형님!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나는 성벽에 기대어 서서 적진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관평 장군을 찾을 수 있었다. 그의 몰골은 지난 하루의 고단함을 말해 주고 있었고 눈은 분노와 초조 속에서 번들거리고 있었다.
“자네, 현정 아닌가? 아니, 제갈군사께서 벌써 이 일을 아시는가? ……아! 아무리 신기묘산(神技妙算)한 군사라도 이 며칠 사이의 일들을 멀리 떨어져서 아실 수야 없지…….”
관장군은 다시 망연자실해서 성 밖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에게서 그사이 일어난 일들을 들을 수 있었다. 번성 공격 중에 관공이 화살에 팔을 다쳐 화타에게 치료받은 일, 서황과의 싸움 중에 형주가 오(吳)에 넘어간 사실을 알고 관공이 혼절한 일, 형주로 급히 돌아가는 길에 오의 장수들이 협공해온 일, 그리고 적들의 집요한 회유로 많은 병사들이 도망을 치고 이제는 기껏해야 성한 병사가 삼백 명 남짓하다는 것을.
“자네가 오기 전에 막 원군을 청하러 요화를 보냈네. 유봉과 맹달이 빨리 원군을 보내줘야 할 텐데……. 지금 여기엔 무장은 나와 주창뿐이네. 문관도 왕보와 조누만 있고. 흥(興)이라도 여기 있으면 한결 힘이 될 텐데.”
“흥이 성도에 도착한 날 밤에 제가 형주로 떠났습니다. 모르면 모르되 지금은 군사께서도 형주의 상황이 급박한 걸 아실 겁니다.”
“너무 늦네. 거기서 예가 얼마나 먼가? 맥성은 오늘 아니면 내일이네. 오(吳)의 그 도적놈들한테 몰린 후에 하루 만에 삼백 명만 남았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모든 게 여몽, 그놈의 간계야. 그놈이 육손인가 뭔가 하는 어린놈을 자리에 대신 앉혀놓고 아버님을 방심하게 했지. 그러고는 비겁하게 뒤로 봉화대를 급습한 거야. 여몽, 이 고기를 씹어도 시원치 않을 놈!”
관장군이 부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고요한 새벽을 갈랐다.
“형님, 봉화대가 습격을 당했어도 형주성이나 공안, 남군에서 버티지를 못했습니까?”
“공안은 부사인이 지키고 남군은 미방이 지키고 있었네. 그들은 형주가 넘어가자마자 오에 항복해 버렸네. 미방은 왕세자의 외숙이 아닌가?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모든 것이 다 안 좋게만 돌아가고 있었다. 번성 공략을 시작할 때, 부사인과 미방이 실화(失火)하는 바람에 선봉 자리를 내어 주고 후방에서 두 성을 지키고 있다 하더니 결국은 관공의 등에 비수를 꽂고만 것이다.
“관공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화살에 맞은 상처는 어떠하십니까?”
“우리는 종일 밤낮을 싸우다가 새벽에야 맥성에 들어왔네. 아버님은 지금 대청에 계실 걸세. 양팔을 화살에 다쳐, 비록 나았다 하나 예전 같지는 않으시네. 이제 연세가 예순을 바라보지 않는가? 자네도 힘들 테니 잠시 눈을 붙이고 해라도 뜨거든 아버님을 뵙게나. 적들도 종일 우리를 쫓았으니 잠시 쉴 틈을 줄 걸세.”
나는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성안을 둘러보겠다며 물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