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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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단편소설

맥성의 하루 (3)

조용한 3류 2014. 12. 28. 12:02

여몽이 물러가고, 관평 장군이 분(憤)이 가득한 관공을 모시고 안으로 들어 간 후에 나는 왕보에게 물었다.


“항일이 배반했다는 게 참입니까?”

“관공께서 실망하실까봐 소문이라고만 했는데, 직접 목격한 사람한테 들은 것이오.”

“전에 군사께서도 항일을 조심하라 서찰을 보낸 것으로 아는데 관공께서는 여전히 신임하신 모양입니다, 그려.”

“나와 왕보가 여러 번 간했지만 도리어 어진 사람 욕보인다고 꾸중만 들었소이다.”


조누와 왕보가 여러 번 의견을 낸 모양이었다.


항일은 원래 오나라 사람으로 초나라를 일으켜 한고조와 천하를 다투었던 항씨 집안사람이다. 어릴 때 고향을 떠나 낙양에서 공부를 했고, 손씨가 오나라를 세울 때 고향으로 돌아 왔으나 대접을 받지 못하자 다시 조조한테로 갔었다. 여기서 나의 족형(族兄)인 서서를 만난 모양이다. 족형은 선제를 돕다가 조조의 간계에 의해 모친을 잃고, 평생 조조를 위해서는 한 가지 계책도 쓰지 않겠다며 물러나 있을 때였다. 그는 조조가 족형의 재주를 높이 사는 걸 알고는 자신을 천거해 달라고 여러 번 부탁을 했다. 그러나 이것도 여의치 않자 형주로 내려가 유표의 눈에 띄려고 했던 모양이다. 이 역시 유표가 바로 죽고 형주 땅이 조조에게 넘어 갔다가 적벽 큰 싸움 후에 선제께서 주인이 되시니 뜻대로 되지 않았다. 더구나 형주 일대의 모든 선비와 재사들의 내력을 훤히 꿰뚫으시는 스승께서 선제의 삼고초려로 세상에 나온 이후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스승께서는 세상이 혼란하면 항일 같은 자가 많다고 하셨다. 일신의 영달만 꾀하다가, 그마저 뜻대로 안 되면 뒤로 물러나서는, 선비가 나서기에는 혼탁한 세상이라고 입으로만 재잘대는 그런 놈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된 것도 다 그 항가 놈 탓이요. 옆에서 얼마나 오나라를 업신여겼소? 우리가 상대할 곳은 중원을 차지한 조조이지 변방에 도사린, 아버님보다 20살이나 어린 손권은 아니라고.”


언제 나왔는지 관평 장군도 말을 거들고 있었다.


“다른 선비들 말을 이리저리 주워 모아서 제 혼자 방책을 수립한 양 떠들지 않았소이까? 더구나 육손이 여몽 대신 새로 부임하자, 병법도 모르는 그런 애송이는 관공의 청룡도만 보아도 벌벌 떨며 도망 갈 것이라고 얼마나 아첨을 해댔소이까?”

“조공, 그런 말하면 뭣 하오이까. 그런 놈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관공 옆에 계속 있게 한 건 모두 우리가 무능한 탓이외다.”


왕보의 말은 모두의 가슴을 서늘하게 스쳐 지나갔다. 


“식량은 여유가 있습니까?”


나의 물음에 관장군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


“하루치가 아니고 딱 한 끼일세. 모든 병사들이 식량이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한 끼 때울 양만 있다고는 아마 짐작하지 못할 것이네.”


관장군은 대답을 하며 혼잣말로 “유봉, 맹달 이 죽일 놈들.” 하고 이를 갈아 붙였다. 


이미 해는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안개처럼 뻗은 누런 먼지 속에 성을 둘러싸고 있는 적군, 온갖 상처와 모진 피로 속에 넋을 놓고 있는 병사들, 한 명의 원군조차 올 수 없는 이곳 맥성, 대체 여기를 한 명이라도 빠져 나갈 수 있을까……. 그제야 나는 스승께서 주신 금낭을 까맣게 잊고 있음을 알았다. 절대절명의 순간에만 열라고 했던 금낭. 나는 사람들로부터 홀로 떨어져 조심스럽게 품속에서 금낭을 꺼냈다. 금낭 하나에는 저녁 ‘석(夕)’자가, 또 다른 하나에는 밤 ‘야(夜)’자가 씌어 있었다. 나는 주저 없이 ‘석’자가 씌어 있는 금낭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