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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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기독교 외

[힘들 때] 감히, 암담한 이에게

조용한 3류 2015. 5. 23. 18:31

감히, 암담한 이에게

 

 

"그러다 나중에 잘되면 무슨 낯으로 보려고?"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농담이든 화를 내든 한번쯤 이런 말을 했을 법하다. 그러면서 이 속담을 뒤에 붙였을 수 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그런데 이게 간단한 말이 아니다. 여름에는 볕이 안 들던 쥐구멍에도 겨울엔 태양의 고도가 낮아져 햇볕이 들더라는, 시간만 지나면 당연히 일어날 거라는 얘기를 그 속담이 가리킨 건 아닐 것이다. 쥐구멍에 볕이 들려면, 쥐의 바람과는 전혀 상관없이 사람이 햇빛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치워주거나, 아니면 큰 공사로 집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물론, 쥐 스스로 햇볕이 드는 곳에 구멍을 낼 수도 있겠지만,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등장한 속담이 설마 그런 것까지 주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속담은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희망을 얘기하고 있었나 보다.

 

우리는 인생의 길을 가다가 초반에 성과가 없으면 대기만성을 떠올릴 때도 있다. 하지만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가 여지없이 의욕을 떨어뜨린다. 물론, 이런 평범한 우리에게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심후한 내공이 있을 리는 없다. 두꺼운 책을 넘기며, 이런 시험범위라면 대세가 기울었다고 다음날 시험을 포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닐 수도 있다.

 

사는 게 답답하다가 난감하게 되고, 애를 썼지만 막막하기만 하고, 그러다가 하릴없이 암담하기까지 할 때, 그래서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속담이 말이 아닌 느낌으로 온 몸을 떨리게 할 때, 이제 우리를 붙잡아 줄 수 있는 건 없는 것인가?

 

누구는 해뜨기 전이 가장 춥다, 라는 말을 되뇔지 모른다. 과학적으로도 가장 낮이 짧은 동지보다 그 이후의 날들이 더 춥듯이 분명 한밤중보다 새벽이 추울 것이다. 그러나 해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누구는 역설적으로, 점점 더 추위가 심해질수록,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기다리면 해가 떠오를 거라는 희망을 놓지 못한다.

 

누구는 불타께서 열반에 들기 전에 남긴 말씀을 읽고 뜨거운 눈물을 삼킬지 모른다. '응당 제도(濟度)될 수 있는 자는 천상이나 인간계에 모두 다 이미 제도하였고, 그 가운데 아직 제도되지 못한 자는 또한 모두 이미 제도를 얻을 인연을 지었느니라.' 또 누구는 이백의 '천생아재필유용(天生我材必有用)'이란 글귀를 찾아내곤, 그래, 나란 놈도 반드시 쓸 데가 있을 거라며 하늘을 쳐다보았을 것이다. 아니면 그 누구는 '때로는 인생이 배신하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라고 했던 스티브 잡스 떠올렸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절망적인데 고작 한다는 말이,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인가? 이렇게 숨이 턱에 차는데 고작 한다는 격려가, '그래도 견뎌야 한다'는 그 말 뿐인가?

 

앞길은 막히고 돌아갈 길마저 끊겼을 때, 게다가 어둠마저 내리고 사방에 불빛 한 점 없을 때, 제 딴에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끝에 희미한 운명의 표식을 따라 힘겹게 걸어왔는데 그게 천사의 격려인지, 아니면 악마의 유혹인지 모를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불행히도 신이 아닌 우리는 별다른 수가 없다. 추운 겨울날 며칠 날씨가 풀릴 때, 이제 봄이 멀지 않았는지, 아니면 또 다시 혹한이 닥쳐올지, 그래서 여기서 마지막 겨울을 버틸지, 아니면 따듯한 남쪽 나라를 찾아 떠날지, 스스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만약 혹한의 끝이 코앞이라 여긴다면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밤의 어둠이 다 됐다고 생각한다면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리다가 빈들에서 망부석이 될 것처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렇게 새벽이 추울 줄 알았다면 결코 기다리지 않았을 거라고 투덜대면서 그냥 버티는 것이다. 때로 사람들이 우리의 진실을, 진심을 몰라주더라도, 공자의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이를 성내지 아니하면 군자가 아닌가(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하면서 그냥 견디는 것이다.

 

(2012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