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귀정굴 탈출기 (3) 본문
(3)
아주 짧은 거리였지만 좁은 통로는 사람을 압박하기에 충분했다. 염교수는 이런 곳으로 안내했냐는 짜증 섞인 표정을 떠올렸다가는 이내 지웠다. 그러나 한 줄로 토끼걸음을 하면서 다시 양미간을 찌푸렸다. 하사장은 습기로 미끈미끈한 동굴 벽에 손을 댔다가는 느낌이 싫었던지 얼굴을 찡그렸다. 민중기는 통로에서 제 1광장으로 빠져나오는 순간 머리를 부딪치고는 못 마땅한 듯 턱을 슬슬 어루만졌다. 맨 뒤에서 따라오던 박승호는 처음 나타난 광장을 보고는 뭐라고 몇 마디 했지만 조유나의 손짓에 다들 몰려가는 바람에 아무도 그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녀는 동굴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듯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녀가 말을 끝내자마자 한마디씩 내놓았다.
"제주도에 있는 굴은 엄청 크던데 이렇게 작은 동굴도 있군요."
"하사장, 터키에 가면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있던 굴들이 있는데 그것도 작습디다."
"그건 자연 반 인공 반 아닌가요? 그리고 방금 들어온 통로처럼 작지는 않던데요?"
염교수는 아까부터 톡톡 나서기 시작한 박승호가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그 나이에 벌써 세계일주를 다 했냐고 불쑥 물었다.
"터키 갔다 오면 세계일주인가요? 그리고 그런 건 동굴 앞에서 찍은 사진만 봐도 다 알 수 있는데요."
입을 다물고 있던 민중기가 풋 하고 웃었다. 나무라고 싶은 60대와 대들고 싶은 30대 둘 다 재미있는지 그는 실실 웃으며 뺨을 쓰다듬었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제 7광장까지 걸어 올라갔는데, 다만 달랐던 것은 중간에 한 번 뿌연 동굴 연못에서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왔던 것과 그러자 가뜩이나 신경이 곤두서있던 사람들에게 조유나가 귀정굴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얘기를 들려 준 거였다. 이 근방에서만 전승되고 있는 전설에 따르면 귀정굴에서는 임진왜란 때 한․중․일의 세 남녀가 만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