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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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꿈
이 글은 내가 어릴 적에 대통령이 되는 꿈을 꾸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내 꿈속에 대통령이 등장했다는 얘기다. 사실 나도 또래들처럼 초등학교 1학년 때 잠시 장래 희망으로 대통령을 꿈꾼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곧 과학자로 바꾸었었다. 물론 과학자가 무언지는 몰랐겠지만.
흔히 귀인이 등장하는 꿈은 길몽이라고 한다. 그래도 대통령은 귀인인 셈이고 동양에서 '귀'라는 글자는 선악을 굳이 따지지는 않는다. 그 귀인인 대통령이 내 꿈에 등장했던 건 딱 두 번이었다. 고르바초프와 노무현. 고르바초프는 권력에서 물러난 다음이었는데 난데없이 대학원 세미나 하는 데 와서는 빙 둘러 앉아 있다가 그냥 떠났던 것 같다. 물론 그 꿈을 왜 꾸었는지는 모른다.
난 꿈이 맞은 적이 없다. 즉 예지몽이라고 할 만한 걸 꾸어본 적이 없다. 모두 '개꿈'인 셈이다. 어릴 때는 걸핏하면 코미디언 구봉서씨가 쫓아오는 꿈을 꾸었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분이지만 그렇게 매일 밤 쫓아오면 도망을 가야 하는 나는 좀 힘들었겠는가?
죽는 꿈이 좋다고 했다. 죽는 꿈 중에서도 제일 좋은 게 벼락 맞아 죽는 꿈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벼락 치는 평원에 서있는 꿈까지 꾸었다. 무슨 까닭인지 그 어떤 두려움도 없어서 벼락을 전혀 피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벼락을 쫓아 다녔다. 그런데 벼락이 다 피해갔다. 이가 빠지는 꿈을 꾸었다고 친척이 다치는 일도 없었고, 등에 식은 땀을 흘리며 깨어나도 결코 흉몽이 아니었다. 그렇게 꿈 같은 꿈만 꾸는 내가 50 평생 유일하게 꾼 예지몽, 그 꿈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왔던 것이다.
꿈에서 나는 그와 감히 어깨동무를 했다. 경복궁이었던 것 같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다가 그대로 경회루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와 나는 물속에서도 그대로 걸었고 잠시 후에 물 밖으로 그대로 걸어 나왔다. 정말 꿈처럼 걸었다. 그러는 동안에 어떤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그 꿈을 꾸고 얼마 있다가 야당에서는 대통령에 대해 탄핵을 했고, 또 얼마 후에는 여당에서 총선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 정도면 앞을 내다본 꿈 아닌가? 자기의 개인사는 하나도 못 맞추지만 국가의 중대사를 내다보았으니 이 정도면, 옛날이라면 나라 무당감 아닌가? 그러나 그런 예지몽은 그 이후에 단 한 번도 없었으니 하늘이 갑자기 능력을 내려준 것도 아니고, 어쩌다 마음 나면 행하던 수행이 효과가 있던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던 시절, 사람들은 고졸이 대통령이 된 것보다는 고졸이라는 것을 빈정거렸고, 그렇게 함부로 얘기해도 될 만큼 자유로웠다. 그리고 경제가 그렇게 어렵다고 했지만 더 어려워진 지금도 그럭저럭 살고 있다.
난 열렬한 지지자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정치 신인 시절 이후로는 비판적인 편이었다. 그러나 새로 봄만 돌아오면 그에게 너무 야박했음이 떠오른다. 그래봤자 진흙 몇 방울이 튄 그를, 진흙으로 온통 범벅된 사람들과 똑같이 대했나 보다.
그래서 새로 봄만 돌아오면 그에게 한없이 미안한가 보다, 이제는 그 스스로 꿈이 돼버린 대통령, 노무현에게.
(2012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