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성경 읽는 재미 (1) - 므리바와 바벨 본문
● 삼국지
...를 12번 읽었다. 정작 재미는 다음 페이지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알 때부터이다. 다음 장이면 공명 선생께서 세상을 떠나는 걸 알아도 여전히 눈시울을 붉히게 될 때 말이다. 한 번만 읽어도 더 보고 싶지 않은 책이 얼마나 많은가?
● 성경을 처음 읽었을 때
끝까지 읽은 건 다윗과 욥과 사도 요한 덕분이었다. 제일 끔찍했던 부분은 민수기. 12지파 이름도 낯선데 각 지파 숫자만 세고 있었으니... 그리고 이때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 두 번째 읽었을 때
민수기도 괜찮아졌다. 출애굽기 후반, 이 물건 저 물건 만드는 부분만 빼고는 다 괜찮다. 그리고 이때는 기독교인이었다. 그런데 로마서는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팠다. 아직 창세기 1장 1절을 읽으면서 눈물을 글썽이지는 않았다.
● 세 번째 읽고 있던 어제...
기이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갑자기 유대인들이 광야에서 떠돌 때 바위에서 샘물이 솟던 장면이 떠올랐다. 민수기 20장. 가만... 이런 일이 전에도 있었지... 그냥 그러고 말았는데 이번엔 찾아보니 출애굽기 17장. 그런데 광야 이름도 신 광야이고, 샘물 이름도 므리바로 같다. 오잉? 같은 일이었나? 40년 광야 생활에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엔 NIV로 찾아본다. 그렇지... 출애굽기 17장은 Sin 광야이고 민수기 20장은 Zin 광야이다. 그래, 이름 비슷한 광야들이 있었다.
지도를 보니 시간상으로도, 출애굽 경로상으로도 광야들의 위치가 적절하다.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9 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민수기 20:7-12)
모세가 성질을 내는 바람에 애써 유대인들을 인도하고도 정작 자신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이해했었는데... 영 12절이 개운하지 않다. 성질을 부렸기로서니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와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하실 것까지야 없지 않은가? 물론 나는 축자영감설까지야 아니지만, 성경의 기자가 허투루 쓴 부분이 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뭘까... 이전 같았으면 이 정도에서 머물렀는데 두 사건의 성경 본문을 비교하고 싶어졌다.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출애굽기 17: 5-7)
Sin 광야에서는 '반석을 치라'고 하셨지만 Zin 광야에서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고 하셨다. 뭘까... 소파에 드러누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Sin 광야에서는 하나님께서 그곳에 서 계셨고, 반석을 치라 하셨다. 그러나 Zin 광야에서는 그곳에 안 계셨고, 반석에 명령하라고만 하셨다. 앞선 경험으로 모세의 믿음이 흔들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Sin 광야에서처럼 바위를 쳤을 수도 있다. (2017. 3. 19 추가)
운동 선수들이 또 잘못을 저지르고 집합해 있었다. 하지만 오랜 합숙 훈련 끝의 선수들을 너그러이 이해한 감독은 선배 주장에게 그냥 해산하라고 한다. (시원한 음료를 준비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주장은 후배 선수들에게 고함을 치고 물건을 던지고 성질을 부렸다면? (지금 그게 입에 들어가냐, 하면서.) 물론 주장은 후배들을 사랑하고 있었지만...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와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가 이해가 간다. 하나님의 진노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소파에서 고개를 끄덕일 때, 이번엔 바벨탑과 선악과가 떠오른다. 뭔가 개운치 않았던...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세기 11:1-9)
시쳇말로 인간의 교만이 하늘을 찌르니 벌을 내리셨다... 인간이 잘난 체 하고 싶어하는 걸 모르셨을까? 인간이 똑똑해지는 걸 염려하셨을까? 그런데 인간이 제대로 똑똑할 수도 있지 않은가?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도 모르는 약재로 약을 만드신 게 아니다. 그건 아니다... 그런데 왜 인간을 흩어버리기만 하셨을까? 불벼락이라도 내리셔서 교만함에 벌을 주시지...
그러면서 최근에 구입한 휴대용 성경을 거듭 읽었다. 온 지면에 흩어짐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반복된 문구가 눈에 뜨인다. 그래! 이거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온 지면에 흩어지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그런데 인간들은 동방으로 옮기다가 평지를 만나니 모여 살고 싶어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인간들을 흩으신 거였다. 지금도 대도시에, 아니, 슈퍼도시에 모여 살고 싶어하는 인간들을 보라. 편하게 사는 점도 있지만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가 아니던가?
근데... 꼭 흩어져야 하는가? 꼭 하나님 뜻이 옳은가?
그래, 자유의지를 주셨으니 그런 의문을 갖는 게 맞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의 한 구석에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아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창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이든, 공간이든.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님이 로마서 강해 중에서 '대부분의 고민은 창세기 1장 1절을 묵상하다보면 사라진다'고 하셨을 때,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했었는데 (표현이 상당히 무례하지만 문맥상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__^), 정말 대단한 말씀이다. 내가 이런저런 이유로 실족하려 할 때마다 얼마나 '창세기 1장 1절'이 내 발밑의 사다리 계단이 되어주었던가? 여호와께서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시면 구태여 그 말씀들을 그렇게 받들 필요가 없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임을 믿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던가?
드디어 한 발을 더 나아가 '선악과'에까지 이른다.
그 이후 진전은 없었고 대신 즐거운 마음으로 막걸리를 마셨을 뿐입니다.^^
그런데 집사람이 사놓은 책(ESV 스터디 바이블)에서 '므리바 샘물'이나 '바벨탑'을 찾아보니, 제가 소파에서 뒹굴며 생각한 것이 대부분 있더군요. 음... 과외에서 배우면 빠르겠지만 혼자 헤매다 보면 실력이 늘 거라고 괜히 위로해봅니다.
정말 이런 재미를 자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