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어머니의 6년 - 다리 골절에서 요양병원까지 본문
노부모가 계신 분들께 다소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분당에 거주하는지라 그 지역 기관들이 등장하지만
그 어떤 상업적 의도도 없습니다.^^
전체 그림(?)을 그리시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이 흙으로 돌아갈 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갈 수야 없겠지요...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왔지만 어머니는 대전에 머무르셨다.
어머니의 속은 이랬으리라.
대전 집을 팔아봤자 수도권에서는 전세밖에 안 될 거고
전세는 수시로 이사를 다녀야 할 거고
자식과 같이 산다는 건 끔찍(?)하고...
그후 우리는 5년 넘도록 3, 4주에 한 번은 대전에 다녀왔다.
명절이면 어머니 앞집, 윗집, 아랫집까지 작은 선물을 드렸고
파출부 아주머니와 앞집 통장 아주머니까지 엮어 비상연락망(?)을 갖춰 놓았었다.
그렇게 집의 방 하나를 비워놓고, 대전에 왔다갔다 하고, 공연한 말씀만 지겹게 드렸던 그 겨울.
어느날 아침, 파출부 아주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문을 안 열어준다고.
전화도 안 받으셨다.
자형께 연락을 드리고, 우리는 대전으로 출발했다.
한 달 전부터 허리가 아팠던 나는 택시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상황은 갑자기 발생했다.
119가 아파트 옥상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왔었고
당연히 현관문은 손잡이를 부수고 들어갔고
하지만 어머니는 바닥에 누워서 119에게 돌아가라고 소리를 치셨다는.
자형이 확인한 상황, 우리가 도착하기 전까지 일어난 일들이었다.
119는 친절했다.
아들의 전화에 다시 출동하고
아내는 어머니 옷을 찢고 119와 담요에 말아 구급차에 실었다.
고관절 아랫부분이 골절이었다. 우리가 사는 분당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다.
아내는 어머니와 구급차로 고속도로를 달렸고
자형과 나는 어머니 집에서 중요한 것만 챙기고 자형 차로 올라왔다.
그런 날은 늘 그렇듯이 대설주의보 같은 게 내린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소개했다고 했다. 본플러스.
10일 쯤 지나고 옆의 재활병원으로 옮겼다. 러스크분당병원.
초기에 재활을 확실히 하면 보행에 지장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어머니의 치매를 알았다.
노인분들은 수술 후에 확실히 변화를 드러낸다.
어머니의 경우, 섬망 같은 건 없었고 다른 회복은 빨랐었다.
마침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요양원이 근처에 있었다.
어머니도 로비를 보고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헤리티지 너싱홈. 그곳에서 거의 6년을 계셨다.
사람들이 치매, 하면
지우개가 기억을 하나씩 지워가는 걸 주로 떠올리는데
치매는 인간의 인지, 정서 기능이 제대로 조화롭게 작동하지 못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니 사람마다 무척 다르다.
강박적으로, 폭력적으로 변할 수도 있고
물론 착하게 변할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불편할 수 있다.
어느 할머니의 경우, '애들 저녁은 뭘 해주나'를 입버릇처럼 되뇌이셨다.
어려웠던 시절의 애뜻했던 모성을 보는 것 같아 애잔한 마음이 들었지만
침상마다 돌아다니면서 하시는 걸 보다 보면 그 마음일 수만은 없게 된다.
(혹시, 그런 분위기를 알고 싶으시면 소설 '피라미드 속의 사람들' 13. 이 눈을 어떻게 치울까, 참조하시길. 이런 식으로 전자책을 팔아먹으려고 하다니...)
분명한 것은 치매는 질환이고, 환자를 집에서 돌본다는 건 무척 힘들다는 것.
당장 화장실 문턱은 노인분들에게 언제라도 흉기가 될 수 있다.
이 요양원은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다.
4인실을 요양보호사 2명이 담당했다.
당연히 비용이 많이 들었다.
외제차도 있고, 골프도 치고, 자녀 조기유학도 보낸 사람들이
이 대목에선 놀랄 때가 많았다.
어머니 집을 처분했다.
연말이면 잔액을 정산해서 자형께 메일로 드린다.
이런저런 증빙 자료들도 남겨놓는다.
부모의 재산은 공금이고 공금에 손 대면 횡령이다.
그러다가 올해 초, 요양원 운영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부분의 요양원들은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고
입소하려면 장기요양 3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했다.
그리고 틈틈이 다른 요양원들을 찾아보았다.
이곳은 헤리티지보다 더 비쌌다.
그런데 요양사분들이 각 방마다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래서 개인 간병인을 따로 쓰시는 분들도 많다고...
효자병원.
말 그대로 여긴 병원이었다.
집에서도 좀 멀고, 아직까지는 아닌 것 같다.
그 다음으로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는 요양원들.
장기요양보험 사이트에 해당 지역 요양원들 리스트가 있다.
홈 페이지로 살펴보고 꼭 방문해 보기를 권한다.
정리해 보면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있는데
요양병원엔 의사가 있어 처방이 가능하다.
중환자실이 있으면 페렴 정도는 자체 치료가 가능하다.
재활병원과 달리 몇 개월마다 병원을 옮길 필요가 없다.
요양원은 의사가 없다.
환자 상태가 안정 되어 있는 경우에는 괜찮다.
콧줄을 한 분들도 꽤 있는데
콧줄을 할 때는 외부 병원으로 가야 한다.
장기요양보험이 적용 되면 보증금 같은 건 없고 대개 선불이다.
개인적으로 간병인을 둘 수 없다.
1-3등급이 안 되면 도와줄 분의 방문을 요청하거나 시설에 출퇴근(?) 해야 한다.
3등급이면 몸을 움직이는 데 남의 도움이 꼭 필요한 상태라는 것.
새로 생긴 요양원 말고는 빈자리가 별로 없었다.
그러고 보면 헤리티지는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중간에 위치한 것 같다.
그렇게 만약을 위해 다른 곳을 알아보면서도 헤리티지에 별 일이 없기를 정말 간절하게 바랐다.
모든 걸 다 떠나서 노인분들에게 거주 이동은 별로 유익하지 못하다.
더구나 4월에 팔꿈치 부분의 골절로 다시 본플러스에서 수술을 받으셨고
체력도 떨어지면서 치매도 점점 심해진 어머니인데...
그런데 9월에 갑자기 날라온 문자 한 통에 달려가보니
100여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비상대책위란 게 만들어졌고, 이사장이란 사람이 사과와 비장한 각오를 말했지만
글쎄... 그때 그곳에 모였던 주름진 얼굴의 보호자들이 그 말 그대로 믿을 정도로 순진했을까?
차라리 내가 환자라면 보증금 돌려받을 때까지 퇴원을 안 하고 농성을 하겠지만
환자는 어머니이고, 여름부터 치매 약 조절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무척이나 힘들게 하고 계셨는데...
간호사, 요양사의 임금 체불 소리를 듣고는 나가기로 결심했다.
의외로 가까운 곳에 요양원이 있었다. 신우.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됐고, 깔끔했고, 별 불만은 없었다.
다만, 헤리티지처럼 요양사분들이 각 방마다 전담하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할머니가 잘 못 드시고 또는 천천히 드신다고 그 분 옆에서 마냥 도와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패키지, 포괄수가, 그런 개념이랄까.
전형적인 경우에는 비용이 적게 들고 좋겠지만
개인적인 서비스를 추가로 원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헤리티지가 틈새시장을 노렸으리라.
식사량이 줄어 가는데 약 조절이 용이하지 못했다.
헤리티지에 계실 때에는 그 옆에 있는 보바스 병원에서 전담을 했지만
이곳은 요양원이라 우리가 외부에서 약을 갖고 와야 했는데
항정신병 약물이 포함되어 있어 의사가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그러다가 폐렴으로 제생병원에 입원을 하셨고
그 바람에 복용량의 조절로 정신은 맑아지신 듯했지만
식사량이 너무 적어 기껏 수액으로 올려놓은 체력은 온데 간데 없어졌다.
연하작용에 문제가 생겨 점도증진제를 모든 음식에 타서 드셨는데
끼니마다 요플레 컵으로 반 컵이나 드셨을까...
점점 식사를 줄이다가 돌아가신다는 게 이런 건가?
그런데 아직 기본의 기본이라는 콧줄이 남아 있고
인공호흡기가 기다리고 있는 게 현실이 아닌가?
제생병원에서 퇴원하신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이젠 요양원 단계를 벗어났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한 달 동안 알아본 요양병원들에 다시 한 번 연락을 해보고
마침 자리가 있다는 곳으로 결정을 하고 그 다음날에 바로 옮겼다.
요양원보다 요양병원에 빈 자리가 더 없는 것 같다.
퇴원을 해야 빈 자리가 생기는데
그 빈 자리는 바로 이승의 빈 자리를 의미할 테니까.
어머니가 얼마를 더 사실지는 모르겠다.
몇 년일 수도 있고 몇 주일일 수도 있다.
며칠 안 좋으시면 금새 돌아가실 것 같다.
아들도 몰라보시다가 또 며칠 후엔 아들 속 뒤집어 놓는 말씀도 하신다.
지난 주엔 드디어 콧줄을 하셨다.
아픈 사람은 엄마인데 나한테 동의를 구하는 병원이 이상하기도 했지만
콧줄까지는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인공호흡기 문제로 잠시 자형과 얘기했다.
수술하고 회복하는 단계도 아니고
내일 모레면 90이신데...
일단은 안 하는 걸로 생각을 모았다.
자형은 막상 때가 되면 처남이 거부할 수 있을까, 하는 것 같다.
글쎄...
인공호흡기도 아니고, 딸아이 인공심폐기를 떼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난 나중에 아무리 아파도 견뎌야 하고, 적어도 구차하게 생존하지는 말아야 한다.
요양원 6년의 감상.
딸들은 많이 봤지만 며느리 보기는 힘들다는 것.
젊은 애들은 도저히 어떻게 시간을 채울 수 없어 병실 밖을 배회한다는 것.
어찌 누워계신 분의 탓은 없겠는가?
그런 점에서 내 결론은
요양보호사, 간호사, 의사 분들께 정말 감사드리고
나보다 더 애써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것.
(설령 나를 독살하려 한다하더라도
지금까지 딸아이와 어머니한테 들인 공으로
모든 걸 용서 받을 수 있다.^_^)
소망이라면
아들 모르게 돌아가시지는 말라는 것.
내가 이 집안 임종 전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