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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 도쿄대 유명 영문학자가 사이비 역사학자로 둔갑?

조용한 3류 2016. 9. 27. 20:31

도쿄대 유명 영문학자가 사이비 역사학자로 둔갑?


[매일경제 2016.09.26 15:01]

[http://premium.mk.co.kr/view.php?cc=110002&field=&keyword=&page=0&no=16216#]




▲ 수메르의 설형문자. 한글 자모와는 전혀 비슷하지도 않은데 설형문자를 고조선의 가림토 문자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물밑 한국사-14]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발생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갔는데, 이 흐름은 크게 두 번 있었다. 180만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난 인류는 우리의 직계 조상은 아니다. 이들은 구석기 문화를 만들었는데, 대략 20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즉 현생인류가 발생했고 이들은 7만년에서 6만년경에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퍼졌다. 이런 과정에서 먼저 떠난 인류와 극소수가 결합하는 일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세세한 부분은 이 자리에서 논할 주제와는 거리가 있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인류 최초의 문명도 아프리카 혹은 아프리카와 가까운 곳에서 발생했는데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지금의 중동 지방이다. 유프라테스 강에 위치했던 수메르는 자신들의 역사를 설형문자로 남겨두었다. 인류 최초로 기록된 문명이 수메르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이비 역사에서는 이 수메르를 우리 민족이 세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메르는 우리나라 말의 '소머리'라고 말한다. 이렇게 발음이 비슷한 단어를 가지고 세계 각국을 다 우리나라에서 유래한 것으로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집트는 '이 집의 터'라는 우리 말이라고 주장하는 어이없는 일도 있다. 


 수메르가 소머리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수메르라는 단어 자체가 수메르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수메르는 수메르를 멸망시킨 아카드 제국에서 부른 말이다. 수메르인들은 자기네 땅을 '키엔기르(Kiengir)'라고 불렀다. 


 수메르는 너무나 오랜 옛날의 나라였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이 모르는 부분들을 가지고 은근슬쩍 우리 민족에 덧붙이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출발해서 유럽과 아시아로 퍼져 나갔다. 그러니 우리 민족에서 수메르가 갈라져 나오려면 인류의 이동이 거짓말이 되거나 인류가 일단 각지에 자리를 잡았다가 다시 수메르를 향해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야 한다는 건 너무나 말이 되지 않으니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그냥 시베리아에서 인류가 발생했다고 우긴다. 이제 인류의 유전자를 분석한 과학적 결과로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하여 퍼져나갔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는 형편인데도 여전히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엉터리 주장의 근거는 수메르에서 우리 말과 같은 교착어가 사용되었다는 것과 검은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들이 동쪽에서 왔다는 사실의 세 가지이다. 세상에 이런 정도를 가지고 말한다면 전 세계의 검은 머리에 교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다 우리 민족인 셈이다. 


 수메르가 우리 민족이라는 주장의 결정적 증거로 사용되는 것 중 하나가 이들의 문자이다. 수메르는 말한 것처럼 설형문자(쐐기문자라고도 한다)를 사용하는데, 점토판에 갈대를 잘라서 만든 필기구로 쓴 것이다. 필기구와 점토판의 특성상 뾰족뾰족한 쐐기처럼 보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문자도 동방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일본의 우에노 게이후쿠(上野景福) 교수에 따르면 수메르족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자생한 민족이 절대 아니고 동방에서 이동해 왔다. 그것도 문자를 가지고 왔는데 바로 태호복희가 쓰던 팔괘부호(八卦符號)와 흡사한 문자를 가지고 5500년 전에 서쪽으로 옮겨 왔다." 


 우에노는 실제로 있는 사람이고 교수도 맞는다. 그것도 도쿄대 영문학과 교수. 1910년에 태어나 일본 쇼와시대를 대표하는 영문학자다. 역사학자도 아니고 수메르를 연구한 사람도 아닌데 위와 같은 헛소리를 했을 리가 없다. 


 위의 주장은 갑돌이가 기침을 했다는 것이 몇 단계를 거치면서 갑돌이가 죽었다는 이야기로 변하는 것과 비슷하다. 국수주의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흔히 보이는 인지부조화의 한 가지 예인 셈이다. 


 원래 위 주장은 송호수라는 사람이 쓴 '민족정통사상의 탐구'(민족문화연구소, 1978)에 나오는 것이었다. 송호수가 쓴 글은 아래와 같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최초로 사용한 설형문자(cuneform)는 BC 2800년대 후반기의 다구(太嘷·단군 복희(伏羲) 씨가 사용했다는 팔괘 부호-중쟁지환(中爭之渙)) 등과 흡사하고, 소아시아에서 영국까지 이동한 켈트(Celt) 고음부(古音符)의 오감(Ogam) 문자와도 흡사한 것으로 보아, 중앙아 시대에 어떤 음표가 있어, 이것이 수메르족에서는 설형문자, 그 후의 몽골로이드에서는 팔괘 부호, 아주 후기의 켈트족에서는 오감 문자적 부호로 각기 분화한 것을 추측게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감 문자에 주석이 붙어 있다. 주석의 내용에 바로 우에노 교수가 등장한다. 주석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105. 上野景福, 「アルファベット」, 語學的指導の 基礎(下), (東京, 昭和三四) p.203에서 符號引用 


▲ <민족정통사상의 연구, 송호수> 65쪽 본문에 나온 오감문자.



우에노 교수가 쓴 '어학적 지도의 기초(하)'(1959년 출간)의 '알파벳' 챕터 203쪽에 나오는 부호를 인용했다는 것이다. 바로 위의 캡처에 등장하는 저 부호를 인용했다는 뜻이다. 우에노 교수는 수메르 사람들이 문자를 가져왔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냥 송호수가 우에노 교수의 책에서 오감문자를 인용해서 사용했을 뿐이다. 


 오감문자는 아일랜드와 픽트어를 표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자로 아일랜드와 영국 지방에서 사용한 문자다. 가장 오래된 것이 AD 4세기다. 수메르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심지어 송호수가 위의 글에서 말하는 것도 어떤 원형이 설형문자와 팔괘부호, 오감문자로 발전했을 거라는 추측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메르 역사연구자가 된 우에노 교수는 이 사실을 과연 알고나 있었을까? 


 어떤 글이 엉터리인지 아닌지 아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이상하게 보이는 주장에 근거 자료, 즉 레퍼런스가 있는지 없는지 살피는 것이 첫 번째이다.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보이는 도쿄대 영문학과 교수의 주장이라고 하는 글을 추적해보니 이런 어이없는 결과를 만나게 된다. 이런 철저한 검증 작업을 통해서 물밑에서 저질러지는 사이비 주장을 파헤칠 수 있다. 


[이문영 소설가] 





타락한 주류를 보다보면 비주류에서 어떤 희망을 찾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비주류가 '못 믿을 존재'라는 걸 어쩌다 볼 때,

그때는 정말 절망스럽다.


그 비주류도 '없어서' 비주류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