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3, 소설집1] 고양이 혁명 (퍼플, 2016) 본문
작가의 말
스무 살 봄에서 다음 해 여름까지 우리 집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집에 왔던 녀석은 몇 개월이 지나 몰래 첫 외박을 나갈 정도로 고양이다웠다. 어느 여름 저녁, 틀림없이 오늘도 집에 없으려니 하면서 이름을 불렀을 때, 녀석은 놀랍게도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야옹' 하고 대답을 했다. 혼자 조용히 달을 바라보다가 마치 나보고 옆으로 오라는 듯이 부드럽게 고개를 돌리며……. 나와 녀석은 나란히 작은 정원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이나 보름달을 쳐다보았었다.
중편 '고양이 혁명'은 녀석과의 추억을 쓴 건 아니다. 나는 그 녀석이 나보다 더 하염없이 달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런 의문에 고양이마저 갑자기 떠나보냈던 서글픔을 더했을 뿐이다. 2014년 여름 한 달 동안 쓴 이 중편이 어쩌면 나의 마지막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2009년 여름에 쓴 단편이다. 이 글을 쓰고 나는 잠시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었다. 나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지리산 도인 출신의 장선생을 주인공으로 한 다른 소설을 구상한 적이 있었는데, 장선생이 홀연히 지리산으로 돌아간 것처럼 이제는 그 구상 역시 미련 없이 나를 떠나간 것 같다.
중2 때부터 삼국지에 푹 빠졌었던 나는 내가 상상하는 삼국지의 뒷얘기를 쓰고 싶었다. 제 1편인 '맥성의 하루'는 관운장의 마지막 길을 그린 것으로 관심 있는 분은 개인 블로그( http://blog.daum.net/silent.ryu/108 )를 방문하시기 바란다. 2012년 7월에 쓴 이 글은 장비의 최후를 그린 것인데, 결국 내 관심의 종착역인 공명 선생에 대해서는 상상할 기회가 없을 것 같다.
나는 등단도 하지 못했고, 앞선 장편 2편은 보신 분들도 거의 없겠지만, 내 나름대로 ‘진심을 찾기 위해’ 글을 썼고, 나는 그 글들이 3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에서 블로그에 올리는 대신 교보문고 퍼플을 이용한 출간을 선택했다. 읽는 분들의 너른 마음을 기대한다.
지금까지 내 글들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보여줬던 (앞선 2권에 대해 유일하게 독후감을 말해줬던) 김성복님께 고마움을 전하는 건 정말 내게 큰 기쁨이다. 적어도 그는 내가 글을 썼던 게 '한량의 취미'가 아니라는 데 동의했던 것 같다.
끝으로 2015년 1월 5일, '스스로 있는 이'라며 나를 부르셨던 분께, 그러나 '나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아직까지 대답을 못 드렸던 그 분께 나의 가장 진실한 사랑을 바친다.
2016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