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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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생의 끝

네안데르탈인의 슬픔 (4)

조용한 3류 2014. 4. 25. 13:04

(4)


‘인류 오디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느라 12시가 넘어서야 자리에 누웠다. 내가 학교 다닐 적에는 네안데르탈인이 크로마뇽인을 거쳐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했는데, 지금은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가 공존했고 둘이 경쟁하다가 결국은 우리의 조상이 생존에 성공했다고 하는 모양이다.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얘기는 자주 변하고 있었다. ‘인류 오디세이’에서는 그들에게 장례가 없었다고 했지만, 다른 쪽에서는 그들의 헌화하는 장례풍습을 얘기하기도 했다. 물론, 삼십여 년 전 광주 이야기도 백일하에 드러나지 못하는 마당에 수만 년 전 이야기가 또 어떻게 바뀔지는 모를 일이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 사이에 자손이 가능할지도, 유전자 검사를 해 보면 당신이 네안데르탈인의 자손일지도 모를 일이다.


분명 인류 진화과정의 앞부분에서는 가족이, 동료가 죽으면 그냥 두고 떠났을 것이다. 그들이 어느 순간에 이 세상과 차단이 돼도, 언젠가는 자신 또한 가야할 길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그냥 묵묵히 견뎌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의식(意識)이 진화의 진정한 척도일까? 죽은 이의 제사는 꼬박꼬박 지내면서도 남의 무덤이나 상가는 꺼려하는 묘한 세상. 분명 이 귀신이 저 귀신일 텐데……. 아내는 이미 하루의 피곤으로 깊이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숫자를 헤아리며 숨을 길게 쉬어갔다. 처음에는 수행을 위한 시도였지만 요즘은 10분이 지나지 않아 잠이 들게 했다. 


눈앞에 가파른 산을 힘들게 올라가는 네안데르탈인 남녀가 보였다. 여자는 괴로운 표정으로, 축 늘어져 있는 아이를 조심스레 품에 안고 있었다. 다른 네안데르탈인들이 사냥한 고기도 과일도 물도 갖다 주었다. 그런데 아이가 갑자기 어떻게 된 모양이었다. 눈을 감고 있는 아이는 입술이 파랬다. 여자는 기괴한 소리를 질러댔고 남자는 절망에 찬 눈빛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이번에는 바다가 보였다. 파도는 하얗게 부서졌고 백사장은 푸른빛이 돌았다. 털이 수북한 네안데르탈인들이 백사장에 피운 모닥불 주위로 여기저기 흩어져 잠들어 있었다. 먹다 남은 물고기, 흩어진 게 껍질 그리고 꿈을 꾸는 듯 달을 향해 씰룩거리는 두툼한 눈썹들. 무리와 떨어져서 검은 바위에 등을 기댄 남자가 보였다. 그의 검은 눈이 넋 없이 바라보는 곳에 여자가 아이를 꼭 껴안고 있었다. 아이는 푸른 달빛에 얼굴이 파르스름했다.


아침이 되자 네안데르탈인들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도자인 듯한 한 명이 크게 소리를 치자 모두 그를 따라 걸어갔지만, 밤에 깨어 있던 남녀는 어젯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아이도 그대로 여자 품에 안겨 있었다. 남녀는 여느 때처럼 산위에 아이를 내려놓고 왔어야 했다. 지도자는 남녀에게 다시 소리를 질렀다. 창을 들고 걸어가던 남자들도, 아이 손을 붙잡은 여자들도 남녀를 힐끗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얼마 전까지는 같이 사냥을 하고 서로 아이를 돌보았으리라. 그 중의 몇은 날카롭게 괴성을 지르고 돌까지 던져댔다.


밤이 다시 찾아왔다. 전날처럼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달빛 아래 짐승들은 전날처럼 울어댔다. 다시 날이 밝았다.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니!” 죽은 듯 가만있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따뚜!” 남자는 미친 듯 땅을 팠다. 사냥감을 몰아넣어도 좋을 만큼 큰 구덩이가 되었을 때 남자는 여자에게 갔다. “우니!” 남자는 아이를 안아 들었다. 여자는 쑤욱 들어간 눈을 햇살에 찌푸리며 아이를 놓지 않았다. 둘은 한참동안 그대로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아이를 구덩이에 넣고, 아이가 좋아했던 연홍빛 꽃도 수북이 꺾어 넣고, 그리고 흙을 덮었다. 두리번거리던 남자는 이틀 밤 내내 자신들을 지켜보았을 검은 바위를 힘겹게, 힘겹게 굴려 흙 위에 올려놓았다.


또 다시 밤이 왔다. 시퍼런 달빛 아래 짐승들은 그 전날처럼 울어댔다. 죽은 듯 누워 있던 남녀도 일어나 울기 시작했다. “우니!” “따뚜!” “우니!” “따뚜!” 서로의 이름인지, 삶과 죽음을 가리키는 말인지, 뜻 모를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던 남녀의 소리는 멀리멀리 퍼져서 앞서 떠났던 네안데르탈인들을 쫓아갔다. 남자가 꽃을 꺾었던 절벽 위에서는 그제야 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바다를 뒤로하고 차가운 숲으로 날아올랐다.


나는 아내가 깨워도 금방 일어날 수가 없었다. 땀에 젖은 등은 서늘했다. 여자의 넋 빠진 표정, 남자의 절망에 찬 눈빛이 아내의 재촉에 떠밀려 욕실에 들어갈 때까지도 나를 몰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