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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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생의 끝

[한시감상] 모두에게 봄이 따뜻한 것은 아니다

조용한 3류 2022. 4. 1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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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봄이 따뜻한 것은 아니다

 

팔딱거리며 냇물에서 물고기들 뛰어놀고
지천으로 산새들 울고 있는데
나만 홀로 무슨 일 때문에
묵묵히 괴로운 마음 품고 있는가
끝없는 아득한 천지처럼
쌓인 이 한 어느 때나 평온해질까
회옹(晦翁)께서 하신 말씀 세 번 되뇌어본다
“결국 죽느니만 못하다”
 
潑潑川魚戱           발발천어희
得得山鳥鳴           득득산조명
而我獨何事          이아독하사
默默抱苦情          묵묵포고정
穹壤莽無垠          궁양망무은
積恨何時平          적한하시평
三復晦翁語          삼복회옹어
終不如無生          종불여무생

  

- 어유봉(魚有鳳, 1672~1744), 『기원집(杞園集)』 4권, 「한식이 지난 후 풍덕의 묘소로부터 서울로 돌아오다가 시절을 느끼고 슬픔이 일어 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말 위에서 두보(杜甫)의 시구 ‘面上三年土 春風草又生’으로 운을 나누어 읊조리다[寒食後, 自豊德墓下還京, 感時興哀, 懷不自已, 馬上, 以杜詩面上三年土春風草又生, 分韵口占]」

 

    
해설
   어유봉의 본관은 함종(咸從)이고 호는 기원(杞園)이다. 김창협(金昌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28세에 문과 초시에 붙었지만 복시(覆試)에서 자신의 시험 답안지가 바뀌는 부정을 당하자 과거에 미련을 버리고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다. 천거로 벼슬길에 나아가 승지와 시강원찬선 등을 지냈다. 18세기 호락논쟁에서 낙론계를 대표하는 명망 높은 학자로 평가된다.
 
   위 시는 어유봉이 4월 한식을 맞아 선영이 있는 풍덕(豊德)으로 성묘를 갔다가 돌아오며 지은 작품이다. 물고기가 뛰놀고 새가 노래하는 화락한 봄날이건만 그는 왜 이토록 괴로워하는가. 풍덕의 선영에 함께 잠들어 있는 아들 어도응(魚道凝, 1694~1709) 때문이다. 어도응은 1709년 4월 24일, 1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15세에 관례를 치르고 이듬해 장가도 못한 상태에서 병으로 세상을 뜨고 만 것이다.
  
   어도응은 어유봉에게 더없이 특별한 자식이었다. 어유봉의 첫 아들은 태어난 후 곧 죽었고 다음으로 어도응이 태어난 뒤 또 아들 하나를 얻었으나 그 역시 곧 죽었다. 세 아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식이 어도응이었다. 어유봉이 복시에서 답안지가 바뀌는 일을 당했을 때 당시 어른들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는데, 대여섯 살 먹은 어도응은 “아버님께서 다시 과거를 보는 것은 옥을 진흙 속에 넣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진언하였다고 한다. 또 어유봉이 주역을 읽으면서 괘효를 알려주자 손으로 64괘를 그리고 이를 완상하는 등 무척 영리하고 특별한 아이였다고 한다.
  
   어유봉는 아들을 보고 돌아오면서 두보의 「불귀(不歸)」가 떠올랐다. 「불귀」는 두보가 사촌동생을 애도하며 지은 시이다. 두보의 사촌동생은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 하북(河北, 허베이)이 함락되자 그곳에서 15세의 나이로 불귀의 객이 되었다. 두보는 3년이 넘도록 시신이 수습되지 못한 채 하북성 어딘가 묻혀 있을 사촌동생을 안타까워하며 마지막 시구에서 “얼굴 위로 삼 년간 쌓인 흙에는 봄바람이 불면 풀이 또 자라겠지(面上三年土 春風草又生)”라고 하였다. 어유봉은 이 10글자를 각각 운자로 삼아 10편의 시를 지어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슬픈 마음을 표현하였다. 위 시는 그 10편의 시 가운데 마지막 수이다.
  
   시 말미의 “회옹께서 하신 말씀을 세 번 되뇌어본다”는 무슨 말일까. 회옹은 송나라의 학자 주희(朱熹)이다. 주희의 큰아들인 주숙(朱塾)은 1191년 주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주희는 그해 오백풍(吳伯豐)에게 보낸 편지에서 “노쇠한 만년에 이런 화를 당하니 몹시도 견디기 힘듭니다. 바로 죽지 못한 데다 분수에 따라 버티면서 장례를 치르랴 아비 잃은 손자를 돌보랴, 하는 일마다 마음이 아프니 죽느니만 못합니다.[衰晩, 遭此禍故, 殊不可堪. 旣末卽死, 又且得隨分支吾, 謀葬撫孤, 觸事傷懷, 不如無生也.]”라고 하였다. 10편의 시를 읊으며 아들을 추억하고 그리워해 보지만 결국 아버지의 마음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괴로움만 남을 뿐이었다.
  
   자식이 떠난 4월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봄바람은 영원할 것 같던 겨울 추위도 녹였지만 한스러운 그 마음은 녹일 수 없다. 냇물에서 물고기가 뛰어놀고 지천에서 산새가 노래하는 따뜻한 4월의 봄이지만, 그 봄이 모두에게 따뜻한 것만은 아니다.
  

글쓴이 김준섭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