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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 요즘 가나안 성도가 많아지고 있는데...

조용한 3류 2023. 6. 14. 14:23

책: 차준희,  "성도가 묻고 성경이 답하다"

 

일부 발췌. 퍼온 곳  https://blog.naver.com/junamos/223034941631

 

 

질문 9 : 요즘 가나안 성도가 많아지고 있는데 가나안 성도 현상 어떻게 봐야 하나요?

가나안 성도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있지만 현재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기독교인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성도 대부분은 한 두 교회에 10년 이상 정착해서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이며 그중 절반 가량은 소위 구원의 확신도 있는 매우 진지한 기독교인이다.(정재영, 교회 안나가는 그리스도인) 가나안 성도 현상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만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과거에도 있었고 다른 사회에서도 존재하는 현상이다.(정재영, 교회 안나가는 그리스도인) 한국 교회 안에도 이제 ‘예수를 따르기 위해 교회를 떠난다’는 서구교회의 모토가 형실로 다가와 있다(송태근)

현재 우리나라 가나안 성도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추정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대략 100만명 으로 추정한다.(정재영, 교회 안나가는 그리스도인) 그런데 최근 한국 교회 안에서는 가나안 성도를 전체 성도의 20% 선인 200만명에 이른다고 추산한다.(양희송, 세속성자)

과거에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명제가 오랫동안 교회론의 정석으로 수용되었다. 이 명제는 고대 기독교 교부이면서 순교자인 키르리아누스(190-258년)의 선언이다.

그런데 1990년대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교회 안에는 구원이 없다’는 주장도 종종 들린다. 교회는 ‘구원의 방주’는커녕 온갖 ‘스캔들의 온상’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구미정, 기독교 여성의 몸, 폭력과 구원사이)

따라서 현 교회의 제도에 저항하는 가나안 성도들을 섣불리 가르치려 하거나, 강제로 제도권으로 흡수하려 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의 영적인 욕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이것을 기성 교회에서 수용함으로써 교회를 갱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정재영, 교회 안나가는 그리스도인)

보통 기성 교회는 가나안 성도들을 ‘집 나간 탕자’나 ‘문제아’로 간주하면서 교회를 방해하는 철없는 사람쯤으로 여긴다. 그래서 가나안 성도를 품기보다는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거나 반항적이고 인내력이 없는 사람쯤으로 폄하하고 경계한다.(정재영, 교회 안나가는 그리스도인) 그러나 이는 성숙한 자세가 아니다. 가나안 성도가 생기도록 한 원인 제공자는 우리가 다니는 교회다. 그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우리 교회가 먼저 반성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선결 조건이다.

앤런 제미슨은 기존 교회가 교회를 떠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그들이 교회 없는 신앙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고 말한다.(일종의 무교회주의) 교회를 떠난 이들을 기성 교회로 오게 하기는 실제로 쉽지 않기 때문에 교회를 떠난 상태에서라도 신앙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Alan Jamieson. A Churchless Faith: Faith journeys beyond the churches) 이들이 돌아가고 싶어하는 교회를 찾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 기성 교회로 돌아가기를 강요하기보다 교회를 떠난 상태에서라도 신앙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 차선책이 될 수도 있다.(정재영, 교회 안나가는 그리스도인)​

가나안 성도에게 : 기존 교회를 떠났다고 해서 신앙 자체를 저버릴 이유는 되지 않는다. 새로운 유형의 기독교 신앙을 찾아가는 외로운 개척자들이다. 절대 신앙을 포기하지 말라. 어떤 모양이든 기독교 신앙에 머물며 끝까지 성도로 살아가길 바란다. 새로운 시도가 벽에 부딪치고 한계에 도달한다면 여러분의 신앙 유형과 맞는 기존의 교회를 다시 한번 찾고 찾아서 돌아오기를 바란다. 이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당신들을 품어주고 이해하는 교회와 목회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꼭 있을 것이다. 아직 못 만난 것 뿐이다.

기존 성도에게 : 가나안 성도들을 향한 온갖 불평과 비난을 거두라. 그들의 약점과 잘못을 찾으려고 하는 대신 우리가 먼저 반성해야 할 것을 찾고, 끊임없이 새로워지자. 교회의 변화없이 가나안 성도의 귀환은 없다.

현재 우리의 선후배와 가족 중에 가나안 성도인 경우도 있고, 또한 가나안 성도가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특히 지금의 기존 교회 상황은 청장년 세대들이 잠정적인 가나안 성도가 될 확률이 낮지 않다. 이들은 영적으로 마음을 둘 곳이 없는 심정적 가나안 성도들이다. 제발 우리의 교회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가나안 성도가 되어 교회를 떠나는 것은 무조건 비난할 일도 무조건 옹호할 일도 아니다. 기존 교회는 대부분 현재 60-7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분들이 가나안 성도의 다수를 차지하는 20-30대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교회의 어른들이 변하지 않으면 가나안 성도들 되돌아오지 않는다. 우리의 변화 없이 가나안 성도의 귀환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