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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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매국녀 이홍경
매일경제, 기사입력 2014.08.26 17:16:41 | 최종수정 2014.08.27 14:21:52
190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 기혼 여성 대부분은 공식적인 이름이 없었다. 결혼을 하면 출신 마을을 따서 ○○댁 혹은 아이 이름을 따라 ○○엄마로 불리는 것이 통례였다. 그나마 상류층에서는 친정 성씨를 따라 박씨 부인, 김씨 부인 등으로 지칭되곤 했다.
구한말 황현이 남긴 `매천야록`에 따르면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지용의 아내가 일본 사교계에 진출을 하면서 스스로 `이홍경(李洪卿)`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된 것이 우리나라 여성 이름의 시초라고 한다.
그녀는 신여성으로 영어와 일어에 능통했으며, 외모가 수려했다. 원래 그녀는 홍(洪)씨였는데 성이 두 글자인 일본식 이름으로 짓기 위해 자기 성 앞에 남편 성 이(李)를 넣고 자신을 `정승급 벼슬을 하는 사람`으로 높여서 경(卿)이라고 한 것이다. 그녀는 또 한복 대신 양장을 입고 다녔고, 인력거를 타고 갈 때 얼굴을 내밀고 담배를 피우며 의기양양하게 다녔다. 사람들은 그녀가 지나 갈 때마다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가릴 정도였다.
이홍경은 1906년 조선에 파견된 일본 관료, 대한제국 고위 관료 아내들과 함께 부인회를 조직해 활동하기도 했다. 이홍경은 부인회 활동을 통해 알게 된 일본 공사관원 하기와라 슈이치, 구니와케 쇼타로와 드러내놓고 연애를 했으며 대중 앞에서 이들과 공개 키스를 하기도 했다. 심지어 당시 주한 일본군사령관으로 권력의 중심에 있던 하세가와 요시미치와는 통정 관계까지 맺었다. 그녀가 하세가와와 특별한 관계라는 소문이 온 나라에 가득했지만 그녀는 물론 남편 이지용까지 풍문에 전혀 개의치 않고 이들을 통한 자신들 이득을 따지는 데만 골몰했다.
이처럼 대한제국 말기에 권력자들의 일탈과 매국 행위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조정 고위 관료들은 나라를 지키기보다는 자신들 부와 권력을 위해 일본에 협력했고, 그들 아내 역시 이홍경처럼 올바른 처신을 하지 못했다. 오는 29일은 일본에 나라를 완전히 빼앗긴 `경술국치` 104년이 되는 날이다. 자신들 탐욕을 위해 부인은 물론 나라를 통째로 팔아먹는 사람들이 다시는 우리 사회에 나오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
[김준혁 한신대 正祖교양대학 교수]
하도 상상을 초월하기에 퍼왔습니다. 당신도 모르셨지요?
그때는 구한말 유교사회였는데...
임란 때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었다는 글을 징비록에서 읽었을 때보다는 약하지만
신숙주가 단종의 비를 첩으로 삼으려고 했다는 기사보다는 강합니다.
누구는 그러는군요. 이 글은 믿을 수 있냐고. 달리 말하면 '매천'을 믿을 수 있냐는 말인데...
요즘 제 생각은, 그냥 내 상식대로 믿고 살다가, 잘못 됐으면 수정하고...
섣불리 뭐가 진실인지 캐려다가는 그것만으로도 인생이 짧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