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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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단편소설

변명사(辨明士) (4)

조용한 3류 2015. 1. 16. 13:09

(4)

나와는 달리 평범한 영혼들을 만나 무척 한가한 친구를 잠시 방문했다. 그는 산책길에서 벗어나 한가로이 나무 밑에 앉아있었다. 그 옆에선 이곳으로 온 지 며칠 되지 않은 영혼이 벌써부터 지루한 듯 연신 하품을 해대고 있었다.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내가 변명을 담당한 영혼들이 범상치 않음을 알았다. 친구는 나를 위로했다.

 

"그럴 때도 있는 거지. 근데 난 요새 너무 심심하다. 할 일이 없어. 다들 스스로들 알아서 변명을 하고 있네. 내가 할 일이 없어."

 

친구는 연민으로 가득 덮인 눈동자만 10년째 껌벅이고 있다고 했다. , . 하긴 그렇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이들만 담당했으니까. 영혼들이 너무 극에서 극으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난 못마땅한 김에 아직도 하품을 하고 있는 영혼에게 물었다. 그대는 뭘 잘못했냐고. 잘못, 잘못…… 잘못? 영혼은 잘못이라는 단어에 화들짝 놀랐다.

 

"잘못은요? 잘못 없어요. 잘못이라면, 평생 기술개발하며 열심히 물건 만들어 판 죄밖에 없어요."

 

, 인석은 그 흔한 '……습니다'를 한 번도 안 하는구나. 갑자기 방영*과 채혁*에게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개발하기는? 개발한 회사를 먹어치웠지."

 

친구는 쉬는 것도 지겹다는 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직접 개발하는 것만 개발이 아니랍니다. 회사를 인수해서 어설프게 개발된 기술을 잘 손보고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하다구요."

 

"…… 그 말도 일리가 있군. 그래서 잘 고쳐서 성공했는가?"

 

영혼은 나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성공은요. 기술이 별로더라구요. 괜히 돈만 날렸어요."

 

"그럼 잘못한 게 좀 깎이겠구먼."

 

"깎이긴 뭐가 깎여? 활용도 못 하는 기술을 겉에 내걸고는 신나게 장사했으면서……"

 

비로소 그 영혼은 약간 낯을 붉혔고, 친구는 내게 수백만 년 동안 변함없이 순진한데 어떻게 평가를 잘 받는지 모르겠다며 핀잔을 줬다.

 

이런 영혼도 낯을 잠시 붉히고만 말았는데 방영*과 채혁* 두 영혼은 그리도 괴로워하고 있으니, 어떡해서든지 그들을 변명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한다…… 물론 그 사이에 낯빛을 환원시킨 영혼은 다시 변명을 해대고 있었다.

 

"그쪽 동네에서 퇴화라고 말하면 섭섭하고, 이쪽 동네에서 진화라고 말하기엔 섣부른 거죠. 다 그래요. 그렇게 안 하면 사업 못 해요."

 

영혼은 뻔뻔한 무표정이었고, 친구는 또 연민의 표정이었지만, 나는 순간 하늘의 사랑을 느꼈다.

 

나는 빈 들에 휑뎅그렁하게 놓여 있는 검은 나무집과 하얀 나무집을 찾았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왼쪽엔 방영*과 오른쪽엔 채혁*을 데리고 산책길을 따라 걸었다. 물론 나는 더 이상 변명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지 않는 조건으로 그들도 산책에 따라 나섰고, 그들도 산책하는 동안은 울지 않기로 했다. 이곳에선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게 가장 큰 죄이고, 변명사의 추천이 없으면 다음 세계로 넘어갈 수 없었다. 우리 셋은 그냥 걷기만 하기로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