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어느 연구소 이야기 (1) 본문
2007년 이른 겨울에 썼던, 저의 첫 소설입니다.
제 스스로도 소설인지, 다큐인지 구분이 안 가는군요.
뭐... 소설이면 어떻고 다큐이면 어떻습니까?
한 때, 내 마음이,
온전히 갔으면 그만이지...
어느 연구소 이야기
(1)
집에서 공원까지는 5분 남짓 거리였다. 공원 주변의 나무들은 긴 겨울을 앙상한 채로 버티고 있었고,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벤치 근처에는 이미 서너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부탁대로, 카메라는 멀찍이 떨어져서 뒷모습만 내보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목소리 변조도 원하느냐는 질문에 그건 괜찮다고 했다. 세상에 없는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감추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을 시사교양국에 있다고 소개한 PD는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정부출연연구소에 8년 정도 있었습니다. 작년 가을에 그만둔 다음, 지금은 쉬고 있고요. IT-BT 융합 분야의 소규모 연구과제였는데 과책(과제책임자)을 했지요. 기술기획에 참여했던 경험도 있고요.”
“갈 곳도 안 알아보고 그만두셨다고 하던데요, 뭐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음…… 회의를 느꼈겠지요, 더 이상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일단 퇴직금 떨어질 때까지는 좀 쉬려고 합니다.”
어떠한 이유든, 일정한 궤도에서 일탈했다는 사실은 막연한 두려움과 열등감을 만들어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들은 점점 커져갔다.
*
M 방송국 작가로부터 전화를 받은 건 지난주였다. 이공계 위기를 총체적으로 진단하는 특집 프로그램인데, 내 얘기를 취재했으면 했다. 그러지 않아도 올해 들어 ‘이공계 위기’에 관한 기사를 쉽게 접할 수 있었는데, 이공계 지원자가 의․치대와 한의대로만 몰린다던가, 유수 대학 공대생이 휴학을 하고 고시나 공무원시험 준비를 한다던가, 유학 간 우수 두뇌들이 기를 쓰고 외국에 남으려고 한다는 등의 얘기였다.
“그만둔 건 어떻게 아셨나요? 유명한 사람도 아닌데. 전화번호는 또…….”
“취재원은 말씀드릴 수 없고요. 산․학․연에 계시는 분들을 두루두루 취재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궁금한 시선을 뒤로 느끼며 나는 떠듬떠듬 물었다. 결국 다음 주에 집 근처의 공원에서 두 시간 정도 인터뷰를 갖기로 했는데 뭘 털어 놓을지는 마음이 서질 않았다. 아내는 다른 직장에 갈 걸 생각해서 너무 과격하게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혹시라도 아는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면 피곤하니 얼굴을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도 한때는 나 스스로 인생의 첫 꿈을 꾸었다고 했던, 어느 해는 다섯 번의 일요일만을 집에서 쉬기도 했던 바로 그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