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9년 만에 받은 편지 본문
벌써 한 달이 되어 갑니다... 교회 게시판에 올렸던 글입니다.
어제 이장을 했습니다.
납골묘를 마련하고도 두 번의 여름과 겨울을 그냥 보냈었지요.
정말 오랜만에 온 가족이 차에 올랐습니다.
아침부터 속이 안 좋은지 몹시 토했던 아내가 옆자리에,
그리고 어머니와 딸아이는 뒷좌석에 유골함으로...
그렇게 납골묘로 향해 갑니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납골묘 옆에는 주문한 비석이 놓여 있었습니다.
제대로 새겨졌나 찬찬히 살펴봅니다.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출애굽기 3:14)',
3년 전 그날, 제가 들었던 말씀입니다.
납골묘 뒤로 있는 아버님 묘도 돌아봅니다.
그때는 비석의 글처럼 모든 게 무상, 무아라고
부처님 말씀을 믿었었지요.
그동안 어머니와 딸아이가 있었던 곳은 절에 있는 납골당이었습니다.
3년 전 그날이 없었더라면, 오히려 아버님을 그리로 옮겼을 것입니다.
문득, 그 말씀이 떠오르더군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잠언 19:21)'...
햇빛도 뜨겁지 않고 서늘한 바람까지 불었습니다.
미세먼지도 걱정할 필요가 없더군요.
그래도 서로 헤어질 때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니
저희의 마음이 평안할 수야 없었지요.
그래서 그런 기도를 올렸습니다.
'감히 원하오니,
살아생전에 나의 나 된 것이 다 하나님 은혜라 고백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런 날이 오면 저희가 이곳에서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행복한 미소로 죽은 이들을 떠올리며,
언젠가 그들과 함께할 세상을 그리겠나이다.'
그런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저의 눈시울을 계속 적셨던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딸아이 유골함 옆에 있던 명함 한 장.
딸아이 안치단을 열었을 때 물건 둘이 있었습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마련했을 작은 그림 한 장
그리고 명함 하나.
다른 납골당처럼 유리로 되어 있지 않아
그 속에 뭐가 있었는지 저희도 알 길이 없었지요.
아내가 내려가는 차안에서 뭔가를 보면서 눈가를 훔치더니
바로 이것이었나봅니다.
명함 뒤에 글이 있었습니다.
『 ○○이 부모님께.
안녕하세요? 언제 보실지 모르지만 이렇게 안부 인사드립니다.
저는 ○○이 ( )초등학교 다닐 때 있던 목사 □□□입니다.
종종 ○○이 생각날 때 옵니다.
부모님 건강하시고 부족하지만 부모님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이 잊지 않을 겁니다.
2009. 6. 』
아이가 몸이 힘들었던 탓에 좀 편안한 환경을 찾아 전학을 갔던 학교입니다.
장례식 때 일들이 떠오르더군요.
교목을 새로 맡으신, 저보다 젊었지만 선한 얼굴의 목사님,
그 분과 얘기를 나누면서 아주 잠시 동안 미소를 지었던 기억,
그러다 딸아이 빈소에서 미소를 지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던 나...
목사님과 아이만의 사연을 달리 들은 건 없었는데,
2009년이면 아이 떠나고 몇 년이 지난 때였는데,
무엇보다도 그 편지를 보지 못하고 우리가 죽을 수도 있는데...
올라오는 내내 땀 탓을 하며 눈을 껌벅였습니다.
딸아이 떠나고 10년도 넘는 세월...
남한테는 금쪽 같고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게
남의 자식이라고 하는데...
그걸 뼈저리게 알면서도
왜 이리 세상에 진심이 없는지, 왜 이리 빈말이 많은지, 그렇게 구시렁댔었는데...
그런데... 이런 진심이 있는 줄 제가 몰랐습니다.
이렇게 9년 동안 이름 모를 들꽃이 피어 있는 줄, 제가 몰랐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들꽃을 다 보시기에,
어쩌면 들꽃들이 만발한 세상을 보시기에 이리 말씀하셨을지 모릅니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2:27)'
이제 9년 전의 연락처를 더듬어 꼭 그렇게 말씀드리렵니다.
저희가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그래서 이장하려다가 목사님의 그 편지를 읽게 되었다고,
이게 다 하나님 은혜라고, 그렇게 고백하고 싶다고...
이제 글을 끝맺으려고 합니다.
정말 군더더기 없이 쓰고 싶었는데 잘 안 되네요.
사실은 다음 말이 쓰고 싶어 시작했는지 모릅니다.
목사님, 전도사님... 힘드시지요?
뿌리신 씨앗이 그 기슭에서 잘 자라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누군가 이제야 그 들꽃을 보려고 막 고개를 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주님의 손에 이끌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