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조직신학 - 구원론1 (루이스 벌코프 | 권수경, 이상원) 본문
| 구원론 |
II. 성령의 사역 개관 > A. 성령의 사역으로의 전환
- 한편으로는 펠라기우스주의, 반(半)펠라기우스주의, 알미니우스주의, 신율법주의 등 율법 준수주의의 위험을 피하면서, 다른 편으로는 율법 폐기론의 극단 - 이것은 니골라당, 알렉산드리아의 영지주의자들, 자유의 영의 형제단, 보다 열광적인 형태의 재세례파, 아그리콜라의 추종자, 모라비아 교도들, 플리머드 형제단의 일부 등과 같은 종파들에서, 때로는 특정한 교리로, 때로는 단순히 교리적인 경향으로 출현하고 있다 - 을 피하는 것이 필요하다. (668쪽)
II. 성령의 사역 개관 > C. 하나님의 은혜의 시여자로서의 성령
- 제베르그(Seeberg)는 "따라서 '오직 은혜만으로'라는 교리가 승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거스틴의 예정론은 폐기되었다. 예정의 불가항력적 은혜는 세례라는 성례적 은혜에 의해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 스미튼(Smeaton)은 "은혜란 용어는 어거스틴적 의미에서는 성령의 사역에 의해 야기되는 내면적 사랑의 수행을 암시하고, 스콜라주의 신학에서는 영혼의 특성, 즉 내적인 천부적 재능과 믿음, 소망, 사랑의 주입된 습성들을 의미했지만, 현재는 보다 성경적이고 보다 광범위한 의미로 하나님의 마음 속에 있는 값없고 효과적인 호의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 알미니우스주의: 만약 인간 의지가 성령에 일치하고 협력하여 실제로 회개하고 믿는다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복음적인 순종이라는 추가적 은혜와 견인의 은혜를 주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은 인간 의지의 동의 여부에 의존하게 된다. 불가항력적 은총이라는 것은 없다.
- 슐라이에르마허에 있어서는 죄책의 문제가 실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그가 죄책의 객관적 존재를 부인하는 데 기인한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전혀 알지 못했다. (675-676쪽)
III. 보통 은혜 > A. 보통 은혜
- 보통 은혜는 파괴적인 죄의 세력을 억제하며, 우주의 도덕적 질서를 얼마간 유지하여 질서 있는 삶이 가능하도록 하고, 인간에게 다양한 은사들과 재능들을 분여하며, 과학과 예술의 발전을 증진시키며, 어린 아이들에게 막대한 복들을 부어 준다. 칼빈 이후 보통 은혜론은 종종 반대에 부딪치긴 했지만 개혁파 신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인정된 교리이다. 하지만 이 교리를 발전시키기 위한 아무 시도도 오랫동안 행해지지 않았다. 이는 아마도 합리주의의 등장과 보급으로 해서, 특별 은혜만 강조할 필요성이 있었다는 데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680쪽)
III. 보통 은혜 > B. 보통 은혜(일반 은총)의 명칭과 개념
- 도르트 신조는 이를 염두에 두고, "부패한 자연인이 보통 은혜와 타락 이후 그에게 잔존한 은사들을 잘 활용함으로써 더 큰 은혜 즉 복음적 은혜 혹은 구원 은혜 그리고 구원 자체를 획득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자들의 오류를 거부한다고 언명한다. (683쪽)
III. 보통 은혜 > F. 보통 은혜의 열매
- 개혁파 신학자들도 일반적으로 중생하지 못한 자들이 자연적 선과 시민적 선 그리고 외면적인 종교적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중생하지 못한 자들의 이런한 선행이 하나님께서 명령한 선행들로서 실질적인(material) 관점에서 볼 때는 선하지만, 이러한 선행은 올바른 동기에서 유래하지 않고 올바른 목적을 지향하지 못하므로 공식적인(formal) 관점에서는 선이라 명명될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689쪽)
IV. 신비적 연합 > A. 신비적 연합의 본질
- 신자는 '새로운 피조물' 또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의롭다 함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신앙에 의한 중생과 칭의에 논리적으로 선행한다. 하지만 연대기적으로 볼 때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시점이 바로 우리의 중생과 칭의의 시점이다. (697쪽)
IV. 신비적 연합 > B. 신비적 연합의 성격
- 일반적 의미에서 신비적 연합은 그 연합의 정수, 즉 성령의 사역에 의한 주관적 실현만을 의미한다. (697쪽)
V. 부르심 일반과 외적 부르심 > A. 부르심을 처음에 논의하는 이유
- 그리고 성령이 죄인에게 전해 주려고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로서 우리 구원의 공로적 원인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유래한다. 따라서 성령은 자신의 사역을 복음 설교와 결합시키고, 구속의 신적인 메시지가 제시되는 곳에서만 구원적 방식으로 역사한다. 성령은 복음에서 제시된 그리스도와 분리되어서는 역사하시지 않는다. (704쪽)
V. 부르심 일반과 외적 부르심 > B. 부르심 일반
- 펠라기우스: 인간은 본성적으로 완전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복음을 수용하거나 거부할 수 있으며, 따라서 구원의 복을 획득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어거스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의 차이에서 찾았다. 그는 "전에는 저항했던 사람에서의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들음은 하나님의 은혜 자체에서 나온다. 따라서 그가 더 이상 저항하지 않을 때 덕목에 대한 사랑이 그의 내부에서 점화된다"라고 말한다.
- 반(半) 펠라기우스주의: 양자를 중재하고, 어거스틴적인 자유의지의 거부나 펠라기우스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경시를 회피하려고 했다. (중략) ...필요한 은혜는 만인에게 값없이 주어지므로, 인간은 이 은혜의 도움으로 복음적 부르심을 수용하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 (→ 로마 가톨릭)
- 재세례파: 하나님의 말씀을 은혜의 수단으로 인정하지 않고, 소위 내적인 말씀, '내적인 빛'과 성령의 조명을 강조한다. 이들에게는 외적인 말씀이란 죽이는 문자에 불과하며, 내적인 말씀은 영과 생명이다.
- 칼빈: 복음적 부르심은 그 자체로는 효과적이 아니며, 성령이 말씀을 인간의 심령에 구원적으로 적용시킬 때 성령의 사역에 의해 효과적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오직 선택받은 자의 심령과 삶에만 적용된다.
- 알미니우스주의: 다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반펠라기우스주의로 복귀했다. "현실적으로 보편적으로 베풀어지는 은혜로운 도움은 만인이 이를 선택만 하면 영적인 복들을 완전히 소유하고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한다." (706~707쪽)
V. 부르심 일반과 외적 부르심 > C. 외적 부르심
1. 외적 부르심의 구성 요소: 복음의 사실과 구속의 교리의 제시, 회개와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초청, 용서와 구원의 약속 (708쪽)
-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복음의 일반적인 초청과 제의가 자주 예정론과 제한 속죄론 등 즉 마땅히 설교자가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교리와 모순된다는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 설교자는 누가 선택받았는지를 알 수 없다. 예수님은 이를 알고 계셨지만, 구원의 제의를 제한하시지 않았다. (710쪽)
※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2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