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복음의 언어 (제프 밴더스텔트 | 장성은) 본문
- 내 바람은 우선 이 책을 읽는 당신이 복음을 삶에 적용함으로써 소망과 자유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신과 당신 주변 사람들도 복음에 유창해지는 것이다. 복음을 삶의 모든 방면에 적용하여 예수 안에서 소망과 도움을 찾을 수 있도록 당신이 그들을 인도해주길 바란다. (34쪽)
cf.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신11:19)
- 사람은 자신이 말하는 것을 사랑한다. (141쪽)
-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258쪽)
- 대부분의 신자들이 복음을 선전 구호나 광고 카피처럼 말하는 '조각 복음 신자들'이다. 그들은 복음 비슷한 것을 말하지만 사람들이 듣고 믿을 수 있는 진품 복음을 말하지 않는다. 그래놓고 "우리는 복음을 전했지만 그들이 거부했어.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고 귀가 닫혔으니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한다. (58쪽)
- 그들은 그의 심령 가운데 나오는 고민들을 듣고 그에 맞는 말을 해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이 옳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257쪽)
- 과한 것 같음 (공동체 거주 상황을 고려한대도...)
: 자녀와의 예화 (121쪽), '복음에 유창한 공동체는 주기적으로 서로에게 죄를 고백하는 공동체이다' (122쪽) 등
: 상사에게 불만 많은 자매에게, "당신은 좋은 일꾼이니까요. 그러나 먼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상기시켜드리고 싶어요. 사실 우리는 죽어 마땅한 존재에요." (217쪽)
- 나는 이 질문들을 성경공부나 모든 제자훈련 과정 중에 적용할 것을 권면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모든 행위가 (1)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2) 하나님이 무엇을 행하셨는지 (3) 그리스도 안에서 또는 그리스도를 떠나서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리 믿음의 뿌리가 삶의 열매를 생산한다. (177쪽)
- MM, TT, ... , SS (205~207쪽)
: Mission Monday, Teaching Tuesday, With-Family Wednesday, Thanksgiving Thursday, Fun Friday, Serving Saturday)
굳이 비유한다면, 소설보다는 '소설 쓰는 방법'에 관한 책 같았다. 그래서 글 쓰는 방법들을 요약하거나 주옥 같은 예문들 중에 하나를 골라 감상을 쓰고는 책 전체에 대한 독후감이라고 말하기 뭐한 것처럼, 복음을 일상화 하는 방법을 요약정리하기도, 아니면 몇 번은 했을 것 같은 간증으로 귀결될 구원의 은혜에 대해 쓰기도 어색했다.
그렇게 독후감 쓰기에 좋은 책은 아니라며 구시렁대다가, MM에서 SS까지 (205~207쪽) 등 저자의 한없는 열의가 느껴지면 가슴이 뭉클했다. 그러다가 상사에 대한 불만으로 지친 자매에게 "...당신은 좋은 일꾼이니까요. 그러나 사실 우리는 죽어 마땅한 존재에요." (217쪽) 하면서 구원론을 펼치는 부분에서, 드디어 핑계를 찾고 말았다.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핑계를 찾고는 마음 편안히,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는 책을 덮었었다.
고등학교 시절, 방학 숙제를 그냥 몸으로 때우기로 작정한 학생에게 마감을 연장해주는 선생님은 그리 고마운 존재가 아니었다. 오늘 담임목사님의 말씀에서 오랜만에 그 느낌을 받는 순간, 드물게도 달리 결단했던 것 같다. 그래, 돌이키자. 흰머리가 완고함의 표상이 돼서는 안 된다, 돌이키자. 그러고 보니 고맙게도, 책 읽는 내내, 계속 떠오른 고3때 기억이 있었다.
과학 4과목 중에 생물을 못했는데, 그 정도가 좀 심했다. 수업은 재미있었고, 선생님은 자상했고, 공부를 안 한 것도 아닌데, 15문제 중에서 4문제를 맞출 뿐이었다. 그리고 객관식 보기에는 왜 그렇게 답 같은 게 꼭 복수로 존재했는지... 난 여름방학 때 나름 중대결단을 한다. 두터운 학교 교재 대신, 얇고, 쉽지만 정평 있는 교재를 고르고는, 아이들의 웃음을 무시하고 1달 동안 그 책만을 본다. 결국 난 15개 중에 4개 틀리는 걸로 예비고사(수능이나 학력고사의 고전적 형태)에서 대역전극(?)을 펼치는데, 아마 이게 내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스스로 추구했던 ‘유창성’의 효시가 아니었을까?
이제 올해로 9년차 성도인데, 그나마 통독 횟수가 늘자, 감동 받은 성구들도 10여 쪽 넘게 모여 있다. 언제, 어디에서나 떠올릴 수 있는 게 암기의 최고 장점이라는 걸 아는데도, 신명기 말씀(신6:7, 신11:19)이나 이 책처럼 그렇게 복음의 일상화를 강조하는 걸 아는데도,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비유들이 4복음에 수십 개가 있는데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동안 주워들은 게 적지도 않으니, 이젠 사도 베드로의 말처럼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벧전3:15)해야 할 것 아닌가? 나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끝으로, 유창성을 추구하다가 영혼에 던져지는 파문이나 여운이 아쉬우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 문득 떠올랐다. 특새가 선선한 가을과 함께 다가오고 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