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어느 연구소 이야기 (6)
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6) 특집 방송이 있은 며칠 후에 김수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와, 우리 서박사 TV에 나왔데?” “어, 뒤통수만 보여 주었는데.” “에이, 그런다고 모르나? 목소리만 들어도 알겠더구먼.” 나는 그래도 방송 내용을 한번 물어 보기로 했다. “방송은 어땠어요? 난 안 봤는데…….” “이공계는 아무 걱정 없대요.” “어?” “정부 관료도 나오고, 기업에서도 나오고. 아, 그리고 요새 줄기세포로 유명한 그 박사도 나왔지.” “근데?” “기업에서는 앞서 개척해서 나가고 있고, 정부에서는 잘 밀어 주고 있대대.” “그리고?” 김수성의 삐딱한 어투가 전화기를 통해 울려 나왔다. “연구원들은 열심히 불을 밝히며 연구하고 있댑니다. 월화수목금금금…….” 나는 전화를 끊고 멍하니 있었다. 한참동안 그러고 있다가 ‘..
(5) “말씀하신 걸 종합해 보면 결국 문제는 정부란 말씀인가요?” “기업은 돈, 학교는 명예가 장점이라면 연구소는 안정된 연구 환경입니다. 모험적인 기술은 기업에서 달려들기 힘들고, 학교는 체계적으로 학문을 해야 하는 곳이니까 목표를 향해서 질주하기는 힘듭니다. 국가 차원에..
(4) 연구원들을 일 년 내내 연구비 확보에 매달리게 한다는 PBS 등에 대해 답하는 사이, 시간은 꽤 흘러갔다.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에서는 기초기술, 원천기술 연구가 힘들다고 하던데요, 연구하신 분야가 그쪽 아닌가요? 어떠셨나요?” “모험적인 성격이 무척 강했지요. 처음 과제 제안..
(3) “교수님들도 행정 업무에 대한 불만이 높더라고요. 그래도 연구소에는 행정 지원 인력이 많지 않나요?” “구매 업무같이 일반적인 것은 연구소가 잘 되어 있지요. 그런데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이 풀리는 과정에서, 기술 관련한 부분은 주로 연구소들이 맡아 하게 되거든요.” 나는 ..
(2) “어떤 점에 그렇게 회의를 느끼셨나요? 대덕연구단지라면 우리나라 이공계 우수 두뇌들이 모이는 곳 아닙니까? 일반인들은 첨단 기술을 연구하는, 불 꺼지지 않는 연구소를 떠올립니다.” “불 꺼지지 않는 연구소요? 허허. ……연구 외에 일들이 많습니다. 3개월에 한 번 코딩(소프..
2007년 이른 겨울에 썼던, 저의 첫 소설입니다. 제 스스로도 소설인지, 다큐인지 구분이 안 가는군요. 뭐... 소설이면 어떻고 다큐이면 어떻습니까? 한 때, 내 마음이, 온전히 갔으면 그만이지... 어느 연구소 이야기 (1) 집에서 공원까지는 5분 남짓 거리였다. 공원 주변의 나무들은 긴 겨울을 앙상한 채로 버티고 있었고,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벤치 근처에는 이미 서너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부탁대로, 카메라는 멀찍이 떨어져서 뒷모습만 내보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목소리 변조도 원하느냐는 질문에 그건 괜찮다고 했다. 세상에 없는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감추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을 시사교양국에 있다고 소개한 PD는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정부출연연구소에 8년 정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