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맥성의 하루 (5) 본문

글/단편소설

맥성의 하루 (5)

조용한 3류 2014. 12. 28. 12:09

어둠 속에 관장군이 보였다. 손에 뭔가를 들고 바삐 뛰어 가고 있었다.


“형님, 뭡니까?”

“아니, 항일 이놈이 글쎄…….”


화사한 삼각수염을 쓸며 생각에 잠겨 있던 관공은 항일이 보낸 글을 나보고 읽으라고 했다. 


“……형주는 촉(蜀)의 땅이나 촉병은 멀고, 장군께서는 위와 다투느라 오의 병사들이 형주성 앞에 다다름도 몰랐으니, 이 어찌 맡은 도리를 다했다고 하겠습니까? 모름지기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황건적의 난 이후 각지에서 영웅들이 벌떼같이 일어나며 하나같이 백성을 위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실은 자신들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탐한 것이지 그 누구도 백성의 안위(安危)를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형주 백성들의 목숨을 보전하고자 모든 관리들과 함께 항복을 했습니다. 다행히 오의 여몽 장군은 처음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아 병사들의 가족은 무사하고 어느 백성도 난리 중에 털끝하나 다친 바 없습니다.”


나는 편지를 든 두 손이 떨렸고, 불같이 뜨거운 기운이 등줄을 타고 올라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청하노니, 장군께서도 천도를 헤아려 헛된 노력을 기울이지 마시고, 오와 힘을 합하여 위를 토벌하고 천하를 바로 잡아 청사(靑史)에 길이 이름을 남기시기 바랍니다.”

“장군, 소문이 맞았습니다. 항일 이 도적놈이 장군께 항복하라고 하다니. 기어코 형주를 되찾아 그놈의 목을 성문에 내걸어야 합니다.”


관공은 이를 갈아대며 분통을 터뜨리는 주창을 손을 들어 제지하고는 왕보에게 물었다.


“내가 백성의 안위를…… 염려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항일이 썩은 세 치 혀를 굴렸습니다. 언뜻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이는 궤변에 지나지 않습니다. 첫째, 각 나라를 돌며 벼슬을 탐한 자가 어찌 백성의 안위만을 염려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둘째로 관공을 대신해 형주 방비의 소임을 받은 자들이, 앞장서서 적에게 항복을 해놓고는 백성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항복을 했다니요, 어불성설입니다. 셋째로 천도가 옳은지, 그른지 인간이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세상에서 한 길을 택하고는 묵묵히 갈 따름입니다. 그때그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길로 방향을 틀어 놓고는 천도 운운하는 것은 썩은 선비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스승께서 그나마 형주에는 왕보가 있어 걱정을 덜었다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관공은 길을 떠나기 전에 성을 한번 둘러봐야겠다며 나와 관장군을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