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맥성의 하루 (6) 본문

글/단편소설

맥성의 하루 (6)

조용한 3류 2014. 12. 28. 12:11

맥성은 큰일을 앞두고 더욱 적막했다. 모든 병사들은 준비를 끝내고 숨죽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흥이와 요화가 여기에 없는 게 행(幸)인지, 불행인지 모르겠구나.”

“형주는 다시 촉의 땅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둘 다 여기 있는 게 보탬이 됩니다.”

“현정, 정말 그렇게 믿느냐?”

“군사의 계책은 틀림이 없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적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계실 겁니다.”


나이는 속일 수 없나 보다. 물밀 듯 쏟아지는 대군 속에서 안량과 문추의 목을 베고, 적지에서 다섯 관을 지나며 

여섯 장수를 참하던 그 위엄과 기개는 그날따라 많이 약해진 듯싶었다.


“나는 십대에 재물을 탐하는 토호를 죽이고 강호를 떠돌아 다녔다. 내 나이 스물셋에 한중왕과 장익덕을 만나 형제의 연을 맺었네. 우리는 곧 천하를 바로 잡을 줄 알았지……. 내가 처음으로 세상에 이름을 드러낸 건, 동탁을 몰아내기 위해 제후들이 낙양을 공격할 때였어. 여포 다음 간다는 화웅의 목을 일합(一合)에 떨어뜨렸지.”


젊을 때를 회상하며 관공은 부드럽게 나를 보았다.  


“마흔 중반에 공명을 만났다. 형님도 그제야 꿈다운 꿈을 꾸신 게야. 그때 공명이 말한 대로 천하는 셋으로 나뉘어졌구나. 공명이 서천으로 떠나면서 내게 형주를 맡긴 지 어언 6년. 허허, 사내자식이 한 번 태어나 세상을 위하여 보답도 제대로 못 하고 몸만 늙었구나. 이제 내 나이도 예순을 바라보니 죽음 보기를 고향집 가는 것처럼 여기기도 하련만, 남는 회한을 감출 수가 없구나.”


어디서 이름 모를 새가 울고 있었다. 늦가을의 때 이른 한기가 마른 풀냄새를 몰아 대지에 퍼져 나갔다.


“평(平)아, 나는 평생을 천(天), 지(地), 인(人)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자 했다. 전에 장요의 말을 좇아 조조에게 몸을 굽혔을 때도 조조가 아닌 한나라에 항복하여 하늘의 도리를 지켰고, 형수와 가족들을 돌보아 땅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았고, 형님이 계신 곳을 찾아 오관참육장(五關斬六將)하면서 사람의 도리를 다하려고 했다. 내 비록 천하를 받들지는 못했지만 추하게 생(生)을 탐하지는 않았느니라.”


관공은 짧은 탄식, 긴 한숨을 내쉬고는 짙은 구름으로 달빛 한 점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찌, 왕세자의 외숙이 항복을 하고 조카가 숙부의 고단함을 외면한단 말인가? 어찌, 제 한 몸만을 위하여 배신을 손바닥 뒤집듯 한단 말인가?”


관평 장군이 뭐라고 위로를 하려 하자 관공은 손을 내젓더니 모든 장수를 빨리 불러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