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맥성의 하루 (8) 본문
나는 구사일생으로 맥성에서 살아남았다. 시체 밑에 죽은 듯 널브러져 찬 서리 내리는 10월의 긴 밤을 보내고, 다시 한나절을 있다가 주력 부대가 물러간 다음에 도망쳐 나왔다. 나는 서천으로 가는 산길에 숨어 적군이 물러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숨을 돌리고서야 스승께서 주셨던 하나 남은 금낭이 다시 떠올랐다. 이제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야(夜)’자가 적힌 금낭. 나는 맥이 풀린 채 금낭을 열었다.
‘무(無)’
무? 아무런 계책이 없다? 내가 할 일도 없다? 아……. 스승께서는 이럴 줄 아셨나 보다. 두 사람은 스무 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나랏일을 다툰다는 세간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성도로 돌아가기 전에 내가 할 일이 하나 남았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떠도는 난민처럼 복장을 하고 형주성으로 들어갔다가 거기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산길을 타고 서천으로 돌아왔다.
내가 성도에 도착하니 그날 밤 관공 부자가 오나라의 매복에 걸려 천추의 한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음을 모두 슬퍼하고 있었다. 나는 관흥을 만나 관공의 마지막 길을 말해 주었고 스승께 형주 일의 처음과 끝을 말씀 드렸다. 그리고 스승으로부터 관공이 세상을 떠난 이틀 후에 항일의 목이 형주성에 걸렸음을 들었다. 쥐새끼 같은 얼굴에 비루한 웃음을 띤,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도 비굴하게 생(生)을 애걸하던 항일이, 그놈의 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