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변명사(辨明士) (1) 본문

글/단편소설

변명사(辨明士) (1)

조용한 3류 2015. 1. 16. 12:59

(1) 2014년 여름에 쓴 거네요. 어디에 응모한 적이 없는, 따라서 별로 수정하지 않은 글입니다.

(2) 2022. 11. 15  무엇에 홀린 것처럼 8년 만에, 그러나 1시간 반 만에, 신춘문예 응모할 결정을 했다. 두고두고 생각해볼 일이다. 처참한 연말이다.


변명사(辨明士)

 

(1)

나는 남을 변명해주는 일을 한다. 사람들이 이승을 떠난 지 며칠이 되면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는데, 그때 나는 그들을 변명해준다. 그들이 이승에서와 달리 극심하게 죄의식을 느끼는 건 심판을 두려워해서라기보다는 그동안 이승의 먼지에 덮여 있던 본성이 온전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물론 무수히 사람들을 죽이며 권력을 행사한 자나 남의 피를 빨아 부()를 세운 자, 그리고 거짓으로 사람을 속여 명성을 얻은 자 들 중에는 여전히 제 잘못을 느끼지 못하거나 제 스스로 변명을 일삼아 나의 할 일을 빼앗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나는 그냥 연민만 느낀다. 구더기가 똥통에 빠져 있는 이유는 그곳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혼들이 죄책감에 시달리는 건 별로 좋은 일은 아니다. 반성은 적절하게! 이것이 바로 내가 근무하는 곳의 표어다. 어차피 제대로 깨달은 상태도 아니고, 게다가 앞으로 갈 곳도 본성으로만 살기에는 좀 벅찰 곳이니 말이다. 먼지 자욱한 비포장도로를 눈부시게 흰 옷을 입고 걸어갈 필요는 없다.

 

내가 이번에 맡은 둘은 은하계 지구행성의 대한민국이란 곳에서 살았던 방영*과 채혁*이라는 영혼이다. 최근에 이곳에서도 영혼의 이승 정보가 누출돼서 한차례 홍역을 치른 일이 있는데, 그 후로 이승의 이름을 다 밝히는 건 금지되어 있다. 이 둘은 스스로 '무시죄(無視罪)'를 지었다고 말했는데, 방영*은 남의 고통을 무시했고, 채혁*은 남과의 약속을 무시했다. 그리고 무시한 대상은 정말 일상적이다. 인간 누구나 한번쯤은 행했을 법한 일들이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지나친 죄의식으로 자신들이 지옥의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1분도 쉬지 않고 주장하거나, 1초도 쉼 없이 괴로워 우는 바람에 나는 본의 아니게 늦게까지 일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느 때는 영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산책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일을 마쳤는데, 이번에는 할 수 없이 그들이 살아온 모습과 그들의 생각, 느낌까지 조사했다. 그러나 인간이란 존재가 워낙 그 속이 복잡다단하여 괜히 살펴봤다는 생각만 들었다. 어쨌든 이승의 많은 존재들은 안심할지어다. 얼마나 이곳에서 그대들에게 따듯한 배려를 하는지. 그걸 그대들이 안다면 한시라도 서둘러 오고 싶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