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어느 연구소 이야기 (5) 본문

글/단편소설

어느 연구소 이야기 (5)

조용한 3류 2017. 9. 1. 00:08


(5)


“말씀하신 걸 종합해 보면 결국 문제는 정부란 말씀인가요?”


“기업은 돈, 학교는 명예가 장점이라면 연구소는 안정된 연구 환경입니다. 모험적인 기술은 기업에서 달려들기 힘들고, 학교는 체계적으로 학문을 해야 하는 곳이니까 목표를 향해서 질주하기는 힘듭니다. 국가 차원에서 뒷심 있게 밀어줘야 하는데, 정권이 5년마다 바뀌고 장관은 해마다 바뀌니 눈에 보이는 행정을 할 수밖에 없지요.”


결국 인터뷰는 이공계 위기의 주범을 정부로, 종범을 연구소로 하는 선에서 끝을 맺었다. 두 시간 동안 공원에서 나보다 더 추웠을 그 PD는 서울에 오면 한번 연락을 달라고, 그리고 힘내라며 다음 인터뷰를 향해 떠났다. 난 다시 담배를 손에 들었다. 8년의 시간 속에서 유독 재작년 그날이 오랜만에 피우는 담배 연기처럼 목에 걸렸지만, 그냥 가슴을 쓸어 가게 내버려뒀다. 나는 다음 주에 방영한다는 특집을 볼지, 말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자정이 넘었는데도 아직 몇 군데 불이 켜져 있었다. 불 꺼지지 않는 연구소, 불이 꺼지지 않는……. 며칠 전 송박사, 김수성과 술 한잔을 하며 나눈 얘기가 떠올랐다. 셋 다 거나하게 취해 있었고 송박사마저 특유의 농담을 즐기지 않았었다. 


“그래, 학교는 명예를 가져가고, 기업은 돈을 가져가라. 그러면 출연연은 뭐냐? 평생 연구하고 싶은 놈한테 그럴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거야. 그러면 온다. 그런데, 이게 뭐야? 만날 연구비 때문에 뛰어 다니고. 서박사, 서박사라면 아끼는 후배한테 대덕에 오라고 하겠어?”


“그게 정부만의 잘못인가요?”


그들은 말하기 곤란하면 자연이 신비하니까, 연구만 할 수 있으면 행복하니까, 라고 했지만, 상황이 바뀌면 제 혼자 옳은 양 떠들었고 돈을 셈할 때면 눈이 반짝 거렸다. 나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제는 술기운도 다 식었는지 공기도, 바닥도 너무 차가왔다.


“연구소에도 좋은 사람들 많죠, 진짜 실력도 있고. 그러나 능력 있는 인간들 다 학교로 먼저 갑니다. 송박사님이라면 괜찮은 대학에 자리가 있는데 여기 왔겠습니까? 왜 그렇게 자신들이 잘났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깊게 들이마신 담배 연기는 한숨인 듯 뿌옇게 퍼져 나갔다. 그날, 그냥 술이나 마시자는 김수성의 손을 나는 몇 번이나 뿌리쳤는지 모른다.


“기업도 아니고, 학교도 아니고, 국민의 혈세를 받고 사는 연구소에요. 출연연에서 해야 할 일이 어떤 건지 분간도 못하고……. 잘 드는 칼은 많죠. 문제는 그게 살상용인지 조리용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저 칼이 잘 든다고 하면 칭찬인 줄 알고 좋아서……. 그러니 영혼이 없다는 소리를 듣지…….”


송박사의 큰 몸집이 못마땅한 듯 흔들렸다. 김수성도 이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팔짱을 낀 채 뒤로 기대앉았다.


“학위 받는 동안 남보다 자기 분야는 더 했겠지요. 그 얘기는, 다른 분야는 남보다 무식하다는 겁니다. 게다가 방정식을 붙든다고 사회 진리가 나오나요? 그러니 그 나이에 아무 생각 없이 살거나 아니면 사납게 욕심내며 살 수밖에 없지.”


“뭐야,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그래, 서지명은 원칙대로 살아서 T부장은 제 욕심만 챙기고 팀원들은 하나씩 떠나갔냐? 차라리 뻔뻔한 기회주의자가 되거나, 아니면 혼자 무릉도원이나 꿈꾸며 살라구!”


“그래요, 송박사님께는 이런 말들이 역겨울 겁니다. 그러나 적어도 난 생존을 핑계로 꿈을 배신하지는 않고 살았어요. 당신은 교묘한 각론으로 챙길 건 다 챙긴 기회주의자 아닙니까?”


그날 새벽 내내 김수성은 송박사와 나를 말리고, 또 말렸다.


지나온 날들이 담배 연기를 따라 허공 속으로 흩어졌다. 새파란 연구원으로 제안했던 첫 번째 과제, 태스크포스 팀을 하면서 만들었던 두 번째 과제.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기에 무던히도 애를 썼는데. 지난 몇 년처럼 학위과정 때 공부했으면 지금 여기 있지도 않겠지……. 뿌연 웃음이 새어 나왔다. 몇 대째인지 모를 담배를 비벼 끄며 하늘을 보았다. 짙은 구름 뒤로 희뿌연 달빛을 멍하니 바라보다 더 이상 한기를 견딜 수 없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래, 이번만은 하늘이 길을 열어줘야 한다.


그로부터 반년 후에 나는 연구소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이 분야가 갓 시작한 학제간 분야라 핵심 기술과 인력을 확보하여 사오 년 후에는 적어도 국내에서 기술 종주권을 갖자고 야무진 첫 꿈을 꾸었지요. 새벽에 퇴근하다가 교통사고로 차가 한 바퀴 구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다음날 할 일이 있어 연구소에 나갔었지요. 그때는 제가 한창 첫 꿈에 빠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과제원이 아닌 동지를 원했고, 주변과 비교했을 때 목표가 너무 컸다 할까요? 평균보다 더 애쓰고도 저한테 좋은 소리 못 들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노력으로 비범한 일을 이룰 수 있을까요? 평범한 일을 위해 굳이 출연연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후속 과제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과제의 대형화, 상용화에 대한 요구도 원인이겠고, 보여줄 결과도 없었고. 사실 후속 과제에서 프로토타입을 계획했으니 이번 과제에서 보여줄 게 없는 건 당연하지요. 과제가 없다고 꼭 연구소를 떠나는 건 아닐 겁니다. 다른 과제하면서 남아있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사실 저는 무능합니다. 지난 7년의 평가 중에서 그냥 과제원으로 있은 1년 말고는 죄다 평균 이하였습니다. 아니, 바닥에 가까웠을 겁니다. 저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데, 이런 평가라면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혹 제가 생각만큼 무능하지 않다면, 연구소는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계속 메시지를 보내왔던 셈이지요.


하늘은 평생 세 번의 꿈을 꾸게 한다던가요. 제 첫 꿈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제 두 번째 꿈을 꾸기 위해 떠나려고 합니다. 이곳에 더 머무르면 은근히 약고 미지근해질 제 자신이 너무도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