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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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 유감

조용한 3류 2016. 12. 21. 14:50


10여 년 전에 쓴 수필입니다.




와이프 유감



혹시 제목을 보고 아내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려나 보다, 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허나, 나도 꼭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하는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중년의 솔직함은 때론 경솔함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도 잘 아는 평범한 50대다. 어쨌든...


만약 당신이 남자라면 그대는 아내를 어떻게 부르는가? 나는 아내를 아내라 부른다. 윗분들에게 얘기할 때면 집사람이라고 하고,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상대라면 그냥 마누라라고 칭한다. 나는 아내를 와이프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내가 결혼할 때쯤인 90년대에도 아내를 대부분 와이프라고 불렀었다. 아내들은 남편들을 신랑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요즘도 이제 막 50대인 아내가 어쩌다가 신랑이라고 호칭하는 걸 우연히 옆에서 듣게 되면 마치 전날 밤 어느 이름 모를 벌레에게라도 물린 것처럼 온 몸이 가려워진다. 이젠 낡은 멋에서 앤티크로 거듭 나야 하는 나이가 아직도 신상품인 신랑이라니...


어쨌든 그렇게들 아내를 와이프라고 부르니 남의 아내도 누구 와이프다. 물론 쓸 데는 와입이나 와잎을 주로 택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뻔한 얘기를 끌어왔을까? 자기가 아내라 부른다고 와이프란 말이 싫다는 건가? 사실 비슷한 얘기다. 나는 가정의 가장 핵심적 관계인 아내라는 말을 외국어로 쓰고 싶지 않다. 얼마나 나라가 못 났으면 그 기본적인 단어조차 외래어를 쓰는가? 그런데 이건 약과다. 누구 엄마가 누구 맘으로 된 지 오래다. 아니,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배운다는 그 말조차 외국에서 갖고 와야 하다니...


대체, 집사람이라고 하면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하고, 마누라라고 하면 한복 입고 비녀 꼽고 돌아 다녀야 하는가? 아니, 누구 엄마라고 하면 미혼인지 기혼인지 구분이 안 가는 외모들을 묘사할 수 없고, 아이의 성장을 주도하는 전략가의 모습을 드러낼 수 없어 그런가? 이런 근본적인 것에 비하면,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단어인 부인을 자기 아내에게 맘껏 적용하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와이프와 맘에 광분했던 나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으니, 바로 '싱글맘'이다. 그걸 우리말로 바꾸면 당연히 홀어미지만, 이 경우엔 굳이 바꾸고 싶지 않은 건 또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