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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한 20년 후에 이 기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근데, 다음 블로그는 살아 있을까? 아니, 나는 살아 있을까? 생존자 "사고 전날 밤 15도 기우뚱, 그때만 세웠어도" <노컷뉴스 | 입력2014.05.09 10:15 [CBS 김현정의 뉴스쇼]> - 잔잔한 바다에서 갑자기 기우뚱 - 해병..
가슴이 답답하고 터질 것 같다. 남들처럼. 도대체, 터무니없다. 생각이 정리가 안된다. 그러니 짜증만 난다. 승무원들이 뻔뻔하게 구조될 때, 아이들은 방송에 따라 가라앉는 배에서 기다리기만 했다는 보도. 구원파와 해피아, 아니, 관피아라는 단어. 구조를 위해 여럿이 출동했건만, 제..
(5) 점심을 먹고 편의점에 들렀다. 계산대에 사람이 없어 둘러보니 직원인 듯한 젊은이가 진열대에서 물건을 골라내고 있었다. “여기 담배 주세요. ……뭐해요?” “유통기한 지난 것들을 빼고 있어요. 뭐 고르셨어요?” 유통기한……. 사는 사람은 기한 넘은 물건을 안 사면 되지만, 파는..
(4) ‘인류 오디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느라 12시가 넘어서야 자리에 누웠다. 내가 학교 다닐 적에는 네안데르탈인이 크로마뇽인을 거쳐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했는데, 지금은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가 공존했고 둘이 경쟁하다가 결국은 우리의 조상이 생존에 성공했다고 하는 ..
(3) 주차를 하고 올라오니 아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몇 번이나 피하던 전화였는데 마지못해 받고는 한바탕 싸운 모양이다. 아이가 아팠던 아내의 친구는 자주 전화를 걸어 아내에게 하소연을 했었다. 역시 아픈 아이의 어미인 아내는 어떤 때는 팔이 아파 전화기를 바꿔들면서까지 그 ..
(2) 귀경하는 봄나들이 차량으로 고속도로는 멈춰 있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계절도 몇 번 바뀌어, 딸아이를 못 본 지도 일 년이 되어 간다. 작년 초봄에 딸아이는 한 달 넘게 병실에서 고생하고 있었다. 어차피 직장을 옮길 참이었기에, 나는 이직하기 전에 한 달을 딸아이 옆에 있기로 했..
2007년 초겨울에 쓴 것입니다. 건조한 걸 좋아하는 제가 봐도 건조하게 썼네요. 진도에서 힘든 여정을 시작한 그 분들께 부처님의 가피가 함께 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네안데르탈인의 슬픔 (1) 나는 전에 살던 동네에 들러 어머님을 모시고 유성에 위치한 한정식 집으로 차를 몰았다. 딸아이 생전에 어머님과 자주는 아니지만 드물지도 않게 들렀던 곳이다. 다행히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일행은 없었다. 아내가 어머님을 모시고 예약된 방으로 들어간 사이, 나는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어느새 5월의 기운은 인간들의 마을에도 가득했다. 10년 전 칠순 때는 어머님과 양쪽 가족들이 속리산으로 여행을 갔었다. 그때는 딸아이가 빨간 입술로 웃으며 우리 옆에 있었지만……. 물론 10년 후에 이렇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었다. 화..
...지난 24일 오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진도항에서 이어진 실종자 가족과 범정부사고대책본부 수뇌부와의 '끝장 회의'는 가족들의 응축된 울분이 분출된 성토장이었다... - [세월호 참사] "왜 엄마를 악마로 만드나? 엄마로 살고 싶다" 하소연- <노컷뉴스 | 진도 | 입력 2014.04.25 06:51> 어..
그냥 내가 느낀 거다.'발견'도, 물론 '깨달음'은 절대 아니다. 죽음에 종류가 있더라.삶을 바라보게 하는 죽음,반대로 죽음을 바라보게 하는 죽음. 어릴 때 형을 보내고난 이 세상이 반쪽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20대에 아버지를 보내고는다른 아들들처럼 오히려 이 세상을 바라보았고40대에 딸아이를 보내고는그냥 미칠 것 같았다. 나도 한때는 아빠였던 터라 세월호의 아빠들을 떠올려본다.그 분들도, 맨뒤에서 버티고 있을 것이다,남은 자식을, 아내를 떠올리면서. '힘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다.그리고 생각보다 도인들이 그렇게 많더라.그런데 그들이 돌아서서 주머니의 동전을 셈하거나,때로는 뒤통수까지 치는 걸 보고,'힘내라'는 그 말이 가장 듣기 싫었다.창문을 닫는 건 바람이 차기 때문이다.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