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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3) 아주 짧은 거리였지만 좁은 통로는 사람을 압박하기에 충분했다. 염교수는 이런 곳으로 안내했냐는 짜증 섞인 표정을 떠올렸다가는 이내 지웠다. 그러나 한 줄로 토끼걸음을 하면서 다시 양미간을 찌푸렸다. 하사장은 습기로 미끈미끈한 동굴 벽에 손을 댔다가는 느낌이 싫었던지 얼..
(2) 그들 남자 네 명이 귀정굴에 온 여정은 5월에 있었던 어느 이공계 학회의 행운권 추첨에서 비롯됐다. 싱가폴 마리나베이 샌즈호텔의 3박 숙박권은 참석자라면 누구라도 응모할 만큼 인기가 있었는데, 그들 4명이 처음부터 당첨된 건 아니었다. 당연히 낙첨된 그들의 기억에서 호텔 이름..
2012년 여름에 쓴 것입니다. 귀정굴 탈출기 (1) 귀정굴(歸正窟)은 귀정강 가에 있었다. 상류에 비가 ○밀리미터 이상 오면 어김없이 귀정굴은 침수가 됐다. 동굴에 강물이 들 것 같으면 당장 출입이 금지됐고 물이 빠지고 며칠이 지나면 다시 일반인의 출입이 허가됐다. 그런 일이 여름이면 ..
(5) 역시 걱정했던 대로 중국에서 온 책략가들은 모든 면에서 태기왕이나 호령보다 한 수 위였다. 그들은 먼저 속임으로 삼형제봉으로 정탐을 가는 시늉만 했다. 그러고는 양 날개의 포위 속으로 들어오기는커녕 먼저 한쪽 날개만 확실히 분질러 놓았다. 그리고 나머지 한쪽 날개를 공격하..
(4) 도사리 싸움 이후, 태기왕은 편하게 잠 든 적이 없었다. 그날 태기왕은 태자를 떠나보냈다. 하루 낮과 밤의 치열한 전투가 끝나던 저녁 무렵, 태기왕은 삼형제 장군이 겨우 구해온 태자를 품에 안았다. "아바마마, 제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 눈의 화살을 뽑아주소서." 태자의 몸은 이..
(3) 주변 큰 나라들의 압력 속에서 태기국이 혼자 외로울 때, 나라에는 작은 변란이 있었다. 진한 출신의 신승이라는 자가 예와 내통하여 태기왕을 몰아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역모에 대한 태기왕의 대처는 몹시 달랐다. 그는 간사한 신승을 놓아 주고, 뜻밖에도 그의 역모를 고변..
(2) 태기국은 작지만 강한 나라였다. 백성들은 먹고 사는 데에 여유가 있었고 태기왕은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꿈꾸었다. 태기국 주변에는 큰 나라로 낙랑, 백제, 진한, 예 등이 있었고 작은 나라까지 치면 수십이었지만, 근래까지도 서로 평온하게 잘 살아왔었다. 낙랑은 중국을 등에 업었..
2012년 7월에 쓴 겁니다. 태기왕의 전설은 태기산의 서쪽(횡성군)과 동쪽(평창군)에 따라 다른데, 이 글에서는 평창군의 전설을 따랐습니다. (전설, 앞 포스팅 참조) 태기왕 (1) 태기왕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군사들을 만났을 때, 그만 눈앞이 아찔했었다. 어둠이 내리고부터 잠시도 쉬지 ..
강원도 횡성의 태기산에 필이 꽂혔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2012년 여름이었지요... 태기왕과 박혁거세 - 횡성군 전설 (산의 서쪽인 횡성군 둔내면과 갑천면, 청일면에 전승)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밀양 삼랑진(三浪津) 전투에서 신라의 박혁거세에게 져 덕고산(태기산)으로 쫓겨 ..
(5) 길 위의 영혼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죄의식이 예민해진 영혼들은 다소곳이 변명사들의 변명을 들으며 조용히 산책하고 있었지만, 변명하기에 바쁜 영혼들은 자기변명을 들어줄 영혼들을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우리 셋을 수군거리며 쳐다보는 영혼들은 많았다. 이게 다 방영*과 채혁*이 몇 날 며칠을 음산하게 울거나 고래고래 울부짖은 덕이리라. 멀리서 빤히 쳐다보던 한 영혼이 서서히 다가왔다. 변명사인 내 눈에는 그의 잘못이 뻔히 들여다보였다. 나는 방영*과 채혁*에게 간단히 귀띔해주었다. 출장에 동행했던 젊은 부하 여직원을 밤중에 자기 숙소로 불러서 성추행을 했었다고. 나의 왼쪽과 오른쪽에서는 더없이 불쾌하다는 탄식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슬그머니 다가오던 영혼은 그 탄식만으로도 이미 우리 셋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