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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데 뭐라도 된 것처럼
어둠 속에 관장군이 보였다. 손에 뭔가를 들고 바삐 뛰어 가고 있었다. “형님, 뭡니까?” “아니, 항일 이놈이 글쎄…….” 화사한 삼각수염을 쓸며 생각에 잠겨 있던 관공은 항일이 보낸 글을 나보고 읽으라고 했다. “……형주는 촉(蜀)의 땅이나 촉병은 멀고, 장군께서는 위와 다투느..
다시 관공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요화가 청하러 간 원군은 안 올 것 같다. 식량도 거의 떨어졌다. 내일이면 적들은 물밀 듯 밀려 올 것이다. 무슨 계책이 있는가?” “지금 상황은 강태공과 장자방이 다시 살아난다 해도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관공께서는 몸을 빼내 서천으로 가시어..
여몽이 물러가고, 관평 장군이 분(憤)이 가득한 관공을 모시고 안으로 들어 간 후에 나는 왕보에게 물었다. “항일이 배반했다는 게 참입니까?” “관공께서 실망하실까봐 소문이라고만 했는데, 직접 목격한 사람한테 들은 것이오.” “전에 군사께서도 항일을 조심하라 서찰을 보낸 것..
그해 7월에 선제께서 한중왕이 되신 이후, 형주성의 관공은 명을 받들어 위(魏)의 번성을 공략하였다. 위왕 조조가 보낸 우금을 생포하고 방덕을 참하였으니, 그 위세에 놀란 조조가 천도(遷都)를 고려한다는 소문이 서천(西川) 지방에까지 퍼졌다. 관공은 관흥을 성도(成都)로 보내 번성 ..
2008년 이른 봄에 쓴 글입니다. 맥성의 하루 나는 안개 속을 헤매고 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스승은,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졸았던 것 같다. 성 안이 소란스러워 돌아보니 사정은 말이 아니었다. 치료를 포기했는지 부상당한 병사들은 신음을 흘리며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그나..
(5) 점심을 먹고 편의점에 들렀다. 계산대에 사람이 없어 둘러보니 직원인 듯한 젊은이가 진열대에서 물건을 골라내고 있었다. “여기 담배 주세요. ……뭐해요?” “유통기한 지난 것들을 빼고 있어요. 뭐 고르셨어요?” 유통기한……. 사는 사람은 기한 넘은 물건을 안 사면 되지만, 파는..
(4) ‘인류 오디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느라 12시가 넘어서야 자리에 누웠다. 내가 학교 다닐 적에는 네안데르탈인이 크로마뇽인을 거쳐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했는데, 지금은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가 공존했고 둘이 경쟁하다가 결국은 우리의 조상이 생존에 성공했다고 하는 ..
(3) 주차를 하고 올라오니 아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몇 번이나 피하던 전화였는데 마지못해 받고는 한바탕 싸운 모양이다. 아이가 아팠던 아내의 친구는 자주 전화를 걸어 아내에게 하소연을 했었다. 역시 아픈 아이의 어미인 아내는 어떤 때는 팔이 아파 전화기를 바꿔들면서까지 그 ..
(2) 귀경하는 봄나들이 차량으로 고속도로는 멈춰 있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계절도 몇 번 바뀌어, 딸아이를 못 본 지도 일 년이 되어 간다. 작년 초봄에 딸아이는 한 달 넘게 병실에서 고생하고 있었다. 어차피 직장을 옮길 참이었기에, 나는 이직하기 전에 한 달을 딸아이 옆에 있기로 했..
2007년 초겨울에 쓴 것입니다. 건조한 걸 좋아하는 제가 봐도 건조하게 썼네요. 진도에서 힘든 여정을 시작한 그 분들께 부처님의 가피가 함께 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네안데르탈인의 슬픔 (1) 나는 전에 살던 동네에 들러 어머님을 모시고 유성에 위치한 한정식 집으로 차를 몰았다. 딸아이 생전에 어머님과 자주는 아니지만 드물지도 않게 들렀던 곳이다. 다행히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일행은 없었다. 아내가 어머님을 모시고 예약된 방으로 들어간 사이, 나는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어느새 5월의 기운은 인간들의 마을에도 가득했다. 10년 전 칠순 때는 어머님과 양쪽 가족들이 속리산으로 여행을 갔었다. 그때는 딸아이가 빨간 입술로 웃으며 우리 옆에 있었지만……. 물론 10년 후에 이렇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었다. 화..